"에어컨은 손님 있을때만" 선풍기 마저 꺼버린 사장님의 '냉방 갑질'

모호한 법·규정에 에어컨 갑질 이어져
현장 근로자 뿐만 아니라 사무직들도 고통
“구체적 제도 마련과 작업중지권 확대해야”
  • 등록 2024-08-25 오후 12:00:00

    수정 2024-08-25 오후 1:35:36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연이은 폭염에도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마저도 사용을 제한하는 사용자들의 ‘냉방 갑질’에 많은 근로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 주택정비사업 건설현장에서 한 근로자가 냉수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25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냉방 갑질’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의 민원이 단체로 쏟아지고 있다.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사에서 일하는 A씨는 기온이 평균 38도, 최고 40도까지 오르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에어컨 설치를 요구했으나 대표는 차일피일 설치를 미루고 있다. 해당 제조업사에는 70대 이상 노동자도 있어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업무를 하는 B씨 역시 조리 중 발생하는 열기로 고통받고 있지만 사장이 손님이 있을 때만 에어컨을 켜라며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직원들이 에어컨을 키면 사장은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에어컨을 꺼버리고 있다는 게 B씨의 증언이다.

특히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C씨의 경우 관리자가 선풍기조차 틀지 못하게 한다며 직장갑질 119에 상담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C씨가 선풍기를 틀면 코드를 뽑아버리고, 땀을 흘리면 땀을 왜 이렇게 많이 흘리냐며 비난했다고 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옥외·내 구분 없이 폭염에 노출돼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근로자에게 적절한 휴식을 부여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폭염에 노출되는 야외에선 휴식시간에 이용할 그늘진 장소 제공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매해 폭염 기간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각종 지침과 가이드를 발표해 폭염 속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단체는 이같은 규정이 있지만 구체성이 떨어져 근로자들은 여전히 폭염에 고통을 받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실제 작업중지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사업장은 극히 일부이고 안전보건규칙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가이드라인은 권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냉방장치이지만 이를 강제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는 실효성 있는 법 제도 마련과 인식개선을 위한 적극적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경아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기후위기에 따른 위험이 점차 심각해질 것이 자명하지만 에어컨 갑질과 관련한 고충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며 “실효성 있는 법 제도 마련과 함께 최소한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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