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42세)는 얼마 전 8년 동안 부어온 종신보험을 해지했다. 은행과 카드사에서 빌린 대출 이자에 밀린 임차료까지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최근 재료비도 급등하면서 더 이상 보험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A씨는 “환급금이 그간 낸 보험료에서 65% 정도 나왔는데, 대출금 일부 갚고 월세 내니까 지금은 남은 게 없다”고 하소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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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와 같이 비상상황시 쓸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보험 계약을 깨거나 보험료를 내지 못해 보험사로부터 보험 계약을 해지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보험을 깨면서 받은 환급금(해약환급금+효력상실환급금)이 35조원을 돌파했다. 고금리·고물가에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생계형 보험 해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생보업계 해약환급금 규모는 34조4557억원으로 전년 동기(24조3309억원) 보다 10조 이상 불어났다. 이는 전월(30조8197억원) 대비로는 3조6359억원 증가한 수치이자, 3분기 해약환급금 기준으로 사상 최대다.
보험사의 해약환급금이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후 돌려받는 돈이라면 ‘비자발적’인 환급금인 효력상실환급금도 증가했다. 생명보험업계의 올 3분기 누적 효력상실환급금은 1조2125억원으로 1년새 29.2% 늘었다. 효력상실환급금은 보험료를 일정 기간 내지 못하면 보험사가 해지 통보를 하면서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효력상실환급금 증가 역시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가입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생명보험협회의 생명보험 성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보험료 납입이 어려워서(32.8%)’, ‘목돈이 필요해서(28.9%) 등의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의 설문조사에서도 보험계약 해지 사유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답변은 ‘경제적 어려움(20%)’으로 나타났다.
환급금 증가에 보험사 유동성 확보도 비상
해약환급금 및 효력상실환급금 증가는 보험사들에게도 악재다. 계약 해지가 급증하면 보험사들이 보험 계약자에게 내줘야 하는 돈도 늘기 때문에 해약 위험 관리가 필요해진다. 이에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보험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인연구위원은 “해지환급금과 효력상실환급금이 가파르게 증가하면 보험사들이 준비해야 하는 현금성 자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새 회계제도엔 보험 계약 해약 위험에 대한 기준 등도 명시돼 있는 만큼 유동성 관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