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류성 선임기자] 수요일 아침마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어김없이 한데 모인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005930) 본관에서 열리는 수요 회의에서다. 회의가 정례화 된 지는 10 여년이 흘렀다.
최근 이 삼성 그룹 사장단 회의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회의의 연차가 쌓여가면서 이곳에서 다루는 강의 주제나 초빙 강사의 면면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작용해서다. 삼성그룹에서 고민하는 현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삼성이 23일 현재 올 들어 이 회의에 초빙한 강사는 모두 33명. 수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등을 제외하고 거의 매주 회의에 강사를 초대한 셈이다. 직업별로 보면 교수가 19명(58%)으로 가장 많았고, 내부 경영자 5명(15%), 기업인· 연구소 임원 각 3명(9%) 순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논의되는 현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회의에서 다루는 강의 주제나 누가 강사로 초빙됐는지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귀띔했다. 삼성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지만 강의료도 일반인이 예상하는 것 이상의 파격적 수준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사를 영입하는 전담 업무는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에서 맡고 있으며 경영진들의 다양한 자문을 거친 후 초빙 강사를 최종 선정한다.
올해는 지난 1월4일 사장단 회의 대상 강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한해를 시작한다는 취지에서 ‘2012년 한국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삼았다(강사 장달중 서울대 교수). 같은달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2012년 북한 동향 및 대응 방안’이라는 테마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를 잇따라 초청했다.
2월엔 ‘평판을 경영하라’는 화제로 로사 전 IMD 교수를 초빙했다. 시기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등과 상속권 분쟁을 한창 벌이고 있던 때라 묘한 여운을 남겼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3월에는 ‘신소통 패러다임, 소셜미디어’를 화두로 강의를 열기도 했다.
4월에는 ‘그룹 중국사업 관련 중국본사 역할’(장원기 중국삼성 사장)을 화제로 다뤘다. 삼성이 중국을 불경기 돌파를 위해 전략적으로 공략해야 할 가장 중대한 시장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달인 5월에는 해외에서 인기가 커지고 있는 K팝을 심도있게 이해하고자 강헌 음악평론가를 모시고 ‘K팝 열풍의 비결과 과제’를 주제 삼아 자문을 구했다. 애플과의 특허 소송 등으로 창조 경영이 이슈가 되자 7월에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아이디어’라는 제목으로 김영희 MBC PD를 불렀다.
8월엔 독도, 센카쿠 열도 등 영토 분쟁이 한·중·일 간 치열하게 전개되자 ‘전환기 중국과 한국’을 논점으로 강의를 열었다(강사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지난주엔 경제민주화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초청, ‘한국 경제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문제로 한 수 지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