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결국 플랫폼 때문이라는 ‘사필귀(事必歸)플랫폼’식의 규제 접근으로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 플랫폼의 책임을 과대 포장하면 ‘규제 왕국’이란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디지털플랫폼정부 산업생태계분과 위원)
카카오 먹통 사태로 정부 여러 부처와 국회에서 온라인 플랫폼 규제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면서, 과잉규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태 재발 방지와 관련이 없는 규제들이 이번 혼란을 틈타 우후죽순 만들어질 경우, 스타트업의 성장을 막고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22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카카오 먹통 사태로 논의되고 있는 플랫폼 규제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마련(공정거래위원회) △부가통신사업자 재난관리체계 편입(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부가통신사업자에 서버 이중화 의무 부과(당정)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야당) 등 여러 개다.
이중 재난관리체계 편입 정도는 주요 인터넷기업이 질 수 있는 의무라지만, 나머지는 지나치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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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이용자 2배 늘었는데… 카카오 먹통 사태로 플랫폼 독점 폐해 규제?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독점화가 카카오 사태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규제마련에 나섰다. 연내 시행을 목표로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제정해 플랫폼의 독과점 지위 판단 기준과 금지 행위 유형을 명확히 하고, 플랫폼의 기업결합 심사를 까다롭게 살펴보는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기존 간이심사에서 일반심사로 변경)도 진행한다.
플랫폼 독점으로 폐해가 발생했다는 진단에 대한 태클도 나온다. 실제 이번 카카오 먹통 사고로 이용자들이 다른 경쟁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목격됐다. 사고 당일 메신저 라인과 택시 호출 앱 우티는 각각 일일 사용자가 108%, 353% 늘었다. 권헌영 교수는 “카카오가 진출한 서비스 시장이 독과점 시장인지 의문이다”며 “카카오톡이 먹통됐을 때 라인, 텔레그램 등 다른 메신저로 옮겨가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구 변호사는 “만약 한 달 정도 카톡이 장애가 난다면 이용자들이 다 넘어가고 다시는 안 돌아올 것”이라며 “이것이 소비자가 선택하는 경쟁시장·민간시장의 무서움이라, 정부가 걱정할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또 “카카오가 시장지위를 남용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고객들을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지 못하게 거래방해를 한 것이 있다면 독점규제법이 안에서 다루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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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통신사업자 재난관리체계 편입 시 스타트업 고려해야
카카오, 네이버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를 국가 재난관리체계에 편입하고, 서버 이중화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도 추진된다. 방송사·통신사 같은 기간통신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안정성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 재난관리 체계에 포함되면 재난대비 계획을 수립해 보고하고 정부의 점검을 받는 의무가 생긴다. 이중화 의무를 지게 되면 유사시를 대비해 똑같은 데이터와 서버를 다른 곳에 예비로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먹통으로 국민이 겪는 불편함이 커진 만큼 관리는 필요하지만,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도입은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 같은 우려에 공감했다. 정창림 통신정책관은 어제(21일)부가통신사업자들을 만나 “오늘 온 사업자들은 대규모 사업자도 있고 소규모 사업자도 있는데 재난관리체계로 편입되면서 규제가 커질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있는 것 같다”면서 “모든 사업자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 국내 사업자에 있어서 중요한 사업자에 의해서 검토하고 있으니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마구잡이식 규제 안돼…민간기업·전문가 함께 숙의해야
이외에도 윤석열 정부의 플랫폼 자율규제 기조에 따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온플법은 플랫폼 기업이 입점 업체에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내용으로, 이번 사태와 연관성이 적다.
이런 이유로 이번 사태가 규제 잔치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제도 미비로 불가피하게 규제가 필요하다면 민간 기업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경진 교수는 “온플법은 이번 건과 거리가 먼데도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렇게 단건으로 논의를 하면 미봉책들만 자꾸 만드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화한 시대에 따른 플랫폼 사업자들의 역할과 책무를 고민하는 큰 그림을 보면서 동시에 시급한 개별 사안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헌영 교수는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시뮬레이션하면서, 데이터에 기반해 규제를 만들고 시행한 후 또 검증해야 한다. 이것이 원래 윤 대통령이 디지털플랫폼정부를 만들면서 하려고 했던 일이다”고 짚었다. 이어 “민간 위원이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 일을 맡겨 합리적인 대응과 규제 설계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