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남편 또 입 열다…"작가에 표절시비는 업보"

남진우 "무인도 아닌 이상 벗어날 길 없어" 주장
'현대시학' 이어 '21세기 문학'에 '특별기고' 내
표절 도덕적 단죄로만 본 김명인 교수 비판
작가 "때론 훔치고 빌리며 고유 텍스트 실현해"
발자크·도스토옙스키 등 유명할수록 표절 숙명
  • 등록 2015-11-29 오전 11:11:27

    수정 2015-11-29 오후 1:24:47

소설가 신경숙(오른쪽)의 남편이자 시인 겸 문학평론가 남진우(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소설가 신경숙(52)의 남편이자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교수(55·명지대 문예창작과)가 표절에 대한 견해를 또 다시 밝혔다. 이번에는 계간지 ‘21세기 문학’ 2015 겨울호에 ‘영향과 표절-영향에 대한 불안과 예상표절의 사이’란 제목의 특별기고를 냈다. 부인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월간 ‘현대시학’을 통해 약 5개월 만에 입을 연 데 이어 두 번째다.

남 교수는 기고문에서 “지난 여름 문단과 언론을 달군 표절 논란 이후 대부분 즉발적이고 감정적인 말들이 쉽게 유포되고 빠르게 소비됐다가 금방 휘발되는 양상을 보여줬다”면서 “표절담론들이 표절이라는 현상에 대해 어떤 정리된 판단이나 해석을 제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혼란만 부채질하는 수준에서 맴돈다면 우리 문학이나 지식사회는 한동안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문학 창작에서 영향이나 표절이 차지하는 범위, 상호텍스트성으로 통하는 영역에 대한 논의가 담긴 해럴드 블룸의 ‘영향에 대한 풍경’과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표절’을 사례로 언급했다. 두 텍스트들 사이에 이뤄지는 넘나듦과 주고받음을 해명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프로이트·라캉 이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썼다.

“블룸이나 바야르는 모두 텍스트의 친자 관계, 즉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텍스트의 가부장적 승계 혈통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려는 입장에 서 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자식들의 투쟁에서 문학사를 추동하는 힘의 원리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평 위에 서있다”고 짚었다.

이어 생물학적 아버지·어머니와 달리 문학에서는 아버지·어머니가 선배 작가의 텍스트 속에 하나로 융합돼 있다고 설명했다. “후배 작가는 선배 작가의 텍스트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스핑크스라는 위험한 암컷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는 위협을 무릅써야 하며 설사 그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잠시 승리의 시간을 가졌다고하더라도 그것이 영속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사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거슬러 뒤에 온 작가가 먼저 온 작가를 창조한다는 점”이라며 “문학사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작가들이나 경향들이 훗날 한 작가의 등장과 더불어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시대를 앞서서 출현한 요소는 처음 등장했을 당시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되다시피 했지만 결국 내 글을 읽고 평을 하고 모방을 할 아들들의 존재가 현재의 나를 시간의 구속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썼다. 신경숙의 단편 ‘전설’(1996)의 한 대목이 앞선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1983)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반박한 내용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남 교수는 동시에 “작가든 시인이든 비평가든 다 시작할 때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인이었을 뿐이다”며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비평가의 창조적 개입, 다시 말해 예상표절이 요청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신경숙 표절 시비를 비판해온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57·인하대 국어교육)을 언급했다. 남 교수는 “표절 사태 이후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명인”이라며 그가 ‘유체이탈의 현상학’(‘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에서 “‘작가의 표절은 남으로부터도 자기로부터도 용서받을 수 없는자멸행위’이다. 따라서 표절 판정을 받은 작가는 ‘뼈를 깎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든 아니든 이제 작가 생명을 스스로 접고 은퇴하는것이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쓴 것을 비판했다.

“일견 단호하고 선명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입장은 그러나 문학의 역사를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단순하고 피상적인 견해인지 알수 있다. 수정주의는 표절을 도덕적 단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관점이다”며 지난 여름 이후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영문학자 윤지관과 소설가 장정일이 조심스럽게 이런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했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표절은 문장, 시퀀스 단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으며 텍스트 전체의 축조 방식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며 “불행히도 표절의 안전지대는 없다. 역으로 작가, 시인들은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부단히 주고받으며 때로 훔치고 빌리며 자기 고유의 텍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라면서 “작가에게 표절 시비는 평생 경계하며 감내할 수밖에 없는 괴로운 업보다. 무인도에서 글을 쓰지 않는 한 표절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은 없다”고 결론냈다. 이어 “어떤 작가가 주목을 받고 유명해질수록 그 가능성도 커진다.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조이스, 카뮈, 헤밍웨이, 숄로호프, 이런 세계문학의 거물들이 다 평생 표절의 유령에 쫓겼다”고도 했다.

앞서 남 교수는 ‘현대시학’ 11월호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표절에 대한 명상 1’에서 “표절은 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 그것도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쓴 바 있다. 남진우 교수는 ‘현대시학’ 12월호에서도 표절에 대한 견해를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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