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난 황순원의 제자.” 소설가 황석영(72)이 소설가 황순원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인터넷서점 예스24가 주최한 소설학교가 열린 경기 양평군 황순원문학촌에서다. 지난 6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소설학교에는 7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행운의 독자 30여명이 등교했다. 황석영과 독자들은 황순원의 또 다른 제자인 문학촌장 김종회 경희대 교수의 안내로 황순원의 친필원고, 연보, 작품세계 등을 둘러봤다. 오후 6시까지 이들은 문학촌 관람, 특강과 질의응답으로 이어진 하루를 오롯이 함께 보냈다.
▲황석영, 스승 황순원을 회고하다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황순원문학촌이 양평군에 자리를 잡은 것은 단편 ‘소나기’의 이 한 문장 때문이다. 황순원의 고향은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이날 강연에 앞서 황석영은 황순원과의 인연에 대해 말을 꺼냈다. 황석영은 1962년 ‘사상계’에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 황순원이었다. “계보로 따지면 황순원계다. 젊었을 때는 수줍고 자존심도 있어 누구의 제자라고 말하기 뭣 했지만 나이도 먹었으니 이제 나도 황순원의 제자라고 하겠다.”
황석영이 기억하는 황순원은 내면이 옹골찬 고집쟁이다. 가녀리고 섬세했지만 문학적 기개가 남달랐다는 것. 이는 리얼리즘 계열에서 황순원의 작품세계가 현실과 거리를 뒀다는 평가와 배치된다. 1940년대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동료들이 친일로 돌아설 때 단편 ‘독짓는 늙은이’를 항아리 속에 묻어두고 해방을 맞았을 정도다.
▲“소설, 인생의 고비 넘길 힘”
황석영은 ‘우리가 소설에서 배우는 것들’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유쾌한 입담을 과시했다. ‘황구라’라는 별명다웠다. ‘문학의 위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석영은 “요즘 베스트셀러에서 소설을 찾기보기가 힘들다. 자기계발과 힐링이 너무 유행한다”고 안타까워 하며 “소설 경시가 더욱 심해졌다. 교육현장에서 인문학이나 문학은 완전히 바닥수준”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싸우다가 거짓말을 하면 ‘소설쓰지 말라’고 하는데 소설은 가상의 진실”이라며 “문학의 위기가 인터넷이나 휴대폰 때문이란 것도 핑계”라고 꼬집었다. 이어 “책을 통해 타자와 세상을 이해하면 자기 안에 터가 생긴다”며 “실직·이별·사망 등 인생의 고비가 올 때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너끈히 극복할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장길산’ 12번 열혈독자 등 질문세례
강연 이후에는 독자와의 유쾌한 대화시간이 이어졌다. 충남 괴산에서 올라온 문학청년, 수업을 빼먹고 왔다는 여대생, 황석영의 ‘장길산’을 12번이나 읽었다는 독자 등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들에게 하나씩 답변하는 도중 황석영은 향후 작품구상도 밝혔다. 황석영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장길산’이 아니라 아직 안 쓴 것”이라며 “‘철도원 3대’를 10년 동안 구상했는데 그걸 쓰고 죽어야겠다”고 말했다. 조선 노동계급의 파노라마로 그려낼 ‘철도원 3대’를 리얼리즘 형식으로 쓰지 않고 환상과 비약을 서슴지 않겠다고도 했다. 또 “동료작가들의 대하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태백산맥’ ‘토지’ ‘변경’ ‘혼불’ 등은 모두 감옥에서 봤다. 대하소설을 읽으려면 감옥에 가야 한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