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벤처대부' 이민화 회장 별세(종합)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별세, 서울아산병원 빈소
85년 메디슨 창업, 95년 벤처기업협회 설립해 초대회장 지내
96년 코스닥 출범·97년 벤처기업특별법 기여, '한국 일으킨 엔지니어' 선정
"아직 할일 많은데 너무 빨리 떠나, 벤처 손실 크다" 한목소리
  • 등록 2019-08-04 오후 12:29:08

    수정 2019-08-06 오전 9:17:19

고(故)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출처 페이스북)
[이데일리 강경래·권오석 기자] “한국은 정부 규제로 인해 이미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벤처기업) 보유국 5위에서 3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일주일 전인 지난달 28일.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카이스트 교수)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는 지금이라도 규제 완화를 통해 유망한 업체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민화 회장이 밝힌 말은 이데일리 ‘유니콘 강국의 조건’ 기획 기사에 충실히 반영됐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미디어에 남긴, 이민화 회장의 생전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벤처대부’ 이민화 회장이 3일 향년 6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한 고(故) 이민화 회장 빈소. 벤처대부를 갑작스레 떠나보낸 벤처기업인들의 표정은 비통하기만 했다. 평소 등산을 하며 건강을 유지했던 이 회장. 최근 낙산해수욕장 등에서 여름휴가를 마친 그는 별세하기 하루 전만 해도 대전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강의를 한 후 서울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이렇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던 이 회장. 하지만 지병이었던 부정맥에 의해 이날 아침에는 깨어나지 못한 채 영원히 잠들었다.

장례식장엔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크루셜텍(114120) 대표)을 비롯해 남민우 다산네트웍스(039560) 회장, 구관영 에이스테크(088800)놀로지 회장, 조현정 비트컴퓨터(032850) 회장, 정준 쏠리드(050890) 회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등 우리나라 벤처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함께 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전 중소기업청장)와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 등 정계와 학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1953년 대구 출생인 이 회장은 197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4년간 대한전선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그는 1985년 우리나라 벤처업계 1세대 기업인 메디슨을 창업했다. 이 회장이 창업한 메디슨은 국내 최초로 초음파진단기를 출시하는 등 현재까지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 산파 역할을 했다. 메디슨은 이후 삼성전자가 인수한 후 삼성메디슨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회장은 메디슨 경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우리나라 벤처업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해왔다. 1995년에는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해 5년간 초대회장을 지냈다. 그가 설립한 벤처기업협회는 현재 회원사 약 1만 4000개를 보유한 거대 단체로 성장했다. 이 회장과 함께 벤처기업협회 창립멤버로 참여한 조현정 회장은 빈소에서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이 회장과 함께 3가지를 실천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었다. 첫째는 벤처기업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모방을 통해 빠르게 따라가는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선도자)가 돼야 한다. 둘째는 벤처기업을 위한 금융은 융자가 아닌 투자가 돼야 한다. 셋째가 벤처기업 직원은 언제든 창업할 수 있도록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벤처기업협회 창립 후 이 같은 3가지를 실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1996년에 벤처기업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한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회장은 1997년 벤처기업 육성을 명시한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에도 기여했다. 벤처기업 자금 조달뿐 아니라 기술 거래에도 관심을 둔 그는 2000년에 한국기술거래소를 출범시킨 후 초대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메디슨 직원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며 언제든 창업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진태 유투바이오 대표와 길문종 메디아나(041920) 대표, 김종철 맥아이씨에스 대표, 강동주 바이오넷 대표 등이 메디슨 출신 기업인들이다. 특히 김진태 대표는 메디슨 직원이었던 1992년 당시 사내벤처인 유비케어를 창업했다. 유비케어는 이후 병의원용 전자차트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창업 5년 만에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김 대표는 유비케어 이후 2009년 체외진단 검사업체 유투바이오를 창업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또한 메디아나는 심장충격기(제세동기), 맥아이씨에스는 인공호흡기, 바이오넷은 생체신호계측기 분야에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빈소를 찾은 김진태 대표는 “이 회장은 나에게 있어 선배 기업인이자 스승이었다. 그는 늘 직원들에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창업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정부와 업계를 위한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4차산업시대를 맞아 벤처생태계도 변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반드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안건준 회장은 “이 회장은 벤처기업인들과 만날 때면 늘 4차산업시대에 걸 맞는 벤처생태계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아가 데이터 이용과 활용 등에 있어 정부가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빈소에 모인 벤처기업인들은 이 회장 뜻에 따라 우리나라 벤처업계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민우 회장은 “이 회장이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너무 빨리 떠나서 벤처업계 손실이 너무나 크다”며 “남은 벤처기업인들이 이 회장 뜻을 받들어 벤처업계 발전을 위해 몇 배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 회장은 우리나라 벤처업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서울대·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60인의 엔지니어’에 선정됐다. 그는 2009년 초대 중소기업옴부즈만 기업호민관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6월부터는 모교인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써왔다. 최근까지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이 회장 장례식은 유족과의 협의를 통해 벤처기업협회 장으로 진행한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크루셜텍 대표)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 등 10여명이 공동 장례위원장이다. 발인은 오는 6일 오전이며 장지는 에덴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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