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열 번째 설거지 그래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살림 깔끔한 그 여자·항상 청결한 그 남자… 혹시 강박증?
뇌 신경회로 일부 고장으로 불안감 억제 못할때 생겨나
다그치고 핀잔주는 건 금물
  • 등록 2008-09-17 오전 9:55:00

    수정 2008-09-17 오전 9:55:00

[조선일보 제공] 50대 주부 한인애씨는 살림 깔끔하게 잘하기로 동네 소문이 자자하다. 거실이며 창틀에 먼지 한 점 없고, 베란다엔 언제고 새하얗게 세탁된 빨래들이 펄럭인다. 하지만 인애씨는 주위 칭찬이 그리 달갑지 않다. "심신이 고달프니까요. '빨래 끝, 청소 끝!'한 지 30분도 안 지났는데 다시 걸레를 들게 돼요.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먼지가 또 잔뜩 날아든 것 같고 어디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요. 여름엔 세탁기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돌려요."

고시를 준비 중인 20대 청년 정훈(가명)씨는 자기 몸은 물론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을 자주 씻는 습관이 있다. 지하철 손잡이든, 컴퓨터 자판기든 손에 뭔가 닿았다 하면 비눗물로 두세 번은 씻어야 하고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할 때에도 타인이 사용한 의자나 책상을 깨끗이 닦고 난 뒤에 사용한다.

◆ 더러운 건 못 참아! 당신은 클린 몬스터?

권준수 서울대 정신과 교수에 따르면 인애씨와 정훈씨는 모두 청결 강박증 환자다. 권 교수는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올림)의 저자로 서울대 병원에 강박증 클리닉을 개설했다. 그는 강박증을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나 충동이 자꾸 떠올라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반복적으로 일정한 행동을 하는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청결 강박증이 가장 흔하다.

원인은 뭘까? "흔히 강박증을 성격적 장애라고 여기는데 사실 모든 강박증은 뇌의 신경회로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일종의 뇌 질환입니다. 화장실에만 다녀와도 온몸이 더러워진 듯한 상상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억제할 수 있는 신경회로의 일부가 작동을 하지 않는 거죠. 유전적·체질적 원인에 개인적 경험이 어우러져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됩니다." '병적이냐, 아니냐'의 의학적 기준은 강박증으로 하루 1시간 이상 고통을 받느냐 아니냐 하는 것. 하지만 예외도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만큼 강박증세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거죠."


잘못된 빨래 상식에 목숨 걸지 마세요

잘못된 상식이나 신념이 '클린 몬스터(clean monster·만화 디지몬에 나오는 캐릭터)'를 낳는 경우도 있다. 세탁법이 대표적. '세제를 많이 넣어야 깨끗하게 빨린다' '물을 가득 채워 오랜 시간 돌려야 한다' '박박 문질러야 때가 쏙 빠진다' 같은 고정관념들이 빨래에 목숨 거는 주부들을 양산한다. 옥시R&D연구소에 따르면 10㎏짜리 세탁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표준 세제 사용량은 물의 높이가 '저'(보통 50L)일 경우 50g, '중'(70L)일 경우 70g, '고'(90L)일 경우 90g이면 적절하다. 세탁 시간도 탈수 포함해 50분 안팎이면 충분하다. 손세탁도 마찬가지. "박박 문질러야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양잿물로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시절이 아니잖아요. 때는 적당한 온도(38℃)의 물과 세제가 빼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빼는 것이 아닙니다."

설거지 깨끗이 한다고 물을 틀어놓고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는 습관도 일종의 강박. 한국산업기술연구원 실험에 따르면 '물만 낭비하지 깨끗이 씻기지 않는다'며 쓰기 꺼려하는 식기세척기가 한번 설거지할 때 쓰는 물의 양이 20L인 반면 물을 틀어놓은 채로 손 설거지를 할 때 소비되는 물의 양은 70~100L에 달했다.

사우나가 보편화되면서는 목욕 강박증도 크게 늘었다.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1주일에 적어도 1회는 목욕탕에 가서 찜질에 때밀기까지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물론 이러한 습관은 가려움증·건조증·습진 증상 등을 유발, 피부 노화를 촉진시키는 지름길.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이주흥 교수는 "목욕(샤워 포함)은 주 2~3회로 한정해 1회에 15분씩 하는 게 좋고 저자극성 비누를 손에 묻혀 로션을 바르듯이 비누질을 해야 하며 겨드랑이·사타구니·젖가슴 밑 등 땀이 많이 차는 부위를 제외하면 비누질을 생략해도 무방하다"고 조언했다.

강박증, 성격 탓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강박증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권준수 교수는 "증세가 약하면 인지행동치료만으로도 호전될 수 있지만 심한 경우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러운 장면을 봐도 손을 안 씻고 견디게 함으로써 '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구나'를 스스로 확인하게 도와주면서 반복행동을 점진적으로 줄여가게 돕는 게 인지행동치료. "손 씻는 강박으로 괴로워하는 여성이 인지행동치료로도 호전이 없어 뇌수술을 권하자 그제야 자기 증상이 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3개월 만에 증세가 호전됐죠. 그만큼 의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강박증을 마음이 약해서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오해해 무조건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하며 다그치고 핀잔을 주는 것은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킨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강박증 환자들은 불안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증세가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스트레스의 원인을 가족들이 해소시켜주려고 노력해야 하며 커피 같은 식품을 멀리해 숙면을 취하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강박증세는 자신의 존재감에 불안을 느낄 때 나름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방식"이라면서 "특히 전업주부들의 청결 강박증은 가정 내 자신의 존재감을 집안의 청결과 살림에 대한 책임감으로 확인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가사노동의 가치를 온 식구가 충분히 인정해주고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가을철 발열성질환 예방법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워터밤 여신
  • 생각에 잠긴 손웅정 감독
  • 숨은 타투 포착
  • 손예진 청순미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