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갈대밭'에 취하고 '꼬막밥상'에 반하고

전남 순천 순천만 여행
540㎡ 규모 거대한 갈대군락
천천히 걸으며 철새도 만나
늦가을의 서정적 풍경 즐겨
벌교의 특산물 꼬막 제철
이달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소설 '태백산맥' 흔적찾기도
  • 등록 2016-11-25 오전 6:03:10

    수정 2016-11-25 오전 8:25:38

11월의 순천만은 바람에 몸을 맡겨 사각거리는 갈대숲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의 울음소리가 어울려 ‘늦가을의 교향악’을 연주한다. 전남 순천시 순천만습지 내 갈대가 무성한 산책로를 관광객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순천=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산하를 물들이던 형형색색의 단풍이 이젠 자취를 감췄다. 온 산의 나무가 한여름의 열기를 삭혀 토해냈던 색채의 마법도 풀렸다. 주변의 풍경은 점차 무채색으로 바뀐다. 이제 곧 겨울이다. 계절의 교차점에서 기온은 갈수록 낮아지고 해는 짧아진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적막하고 가지만 남은 나무는 볼품없이 앙상하다. 그렇다고 설원의 낭만을 기대하기에 이르다. 이런 계절적 이유로 11월 말을 여행의 적기로 꼽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여행지가 남해안을 마주한 전남 순천시 순천만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하염없이 펼쳐진 갈대밭을 거닐며 멀리 남쪽으로 물러가는 가을을 배웅할 수 있는 곳. 바쁜 연말연시를 앞두고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순천이다. 여기에 순천만 인근의 벌교에서는 찬바람이 불어야 살이 오르는 꼬막이 제철을 맞아 밥상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순천만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사진=강경록 기자).


◇끝이 보이지 않는 갈대의 향연

세계 5대 연안 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시와 고흥군, 여수시에 걸쳐 있다. 유자가 유명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에워싸인 넓은 해수면 지역으로 현지에서는 ‘여자만’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갯벌면적은 2260만㎡(683만 6500평)에 달한다. 2003년 습지보호지역, 2006년 람사르협약 등록, 2008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1호로 지정될 만큼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풍경도 뛰어나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숱한 만 중에서 유독 11월 말의 순천만을 최적여행지로 꼽는 이유는 무엇보다 광활한 갈대밭 덕분이다. 순천 시내를 흐르는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지점부터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 540만㎡(163만 5000평) 지역에 거대한 갈대군락이 자리잡고 있다.

갈대는 억새와 함께 늦가을을 상징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억새가 주로 산등성이에 군락을 이뤄 낙엽만 가득한 산의 허전함을 채운다면 갈대는 강가나 습지에 군락을 이루며 늦가을과 겨울 사이에 쓸쓸한 물가를 온기로 전한다.

순천만습지 내 니무데크로 길을 놓은 산책로(사진=김용운 기자).


어느 때보다 11월 말의 순천만이 좋은 이유는 이맘때가 돼야 비로소 갈대가 펄에서부터 사람키만큼 자라 꽃을 피우고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 봄이나 여름의 순천만은 갈대가 채 자라지 않아 갈대밭 특유의 서정적인 풍경을 선사하지 않는다. 게다가 순천만의 특성상 나무가 없어 뙤약볕을 피할 수도 없다. 날벌레도 많다. 하지만 11월 말의 순천만은 다르다. 바람에 몸을 맡겨 사각거리는 갈대숲과 순천만 일대를 날아다니는 철새의 울음소리는 그 자체가 ‘늦가을의 교향악’이다. 갈대는 그 교향악에 맞춰 우아하고 부드럽게 출렁인다.

◇‘김승옥·정채봉문학관’ ‘순천만국가정원’ 지척

순천시는 순천만 일대를 ‘순천만습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갈대밭 사이에 나무데크로 길을 놓아 순천만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 산책로를 만들었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기에도 불편하지 않다. 노을 지는 풍경으로 유명한 용산전망대까지는 순천만습지 입구부터 2.5㎞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남짓이면 왕복할 수 있다.

순천만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사진=강경록 기자).


갈대숲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유유자적 걷는 것이다. 여유롭게 걸을수록 갈대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들을 수 있다. 작은 망원경이나 망원렌즈를 준비하면 철새의 거대한 보금자리인 순천만의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순천만을 찾는 철새는 230여종으로 한국 전체 조류의 절반가량이란다. 운이 좋으면 흑두루미나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나 큰고니처럼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희귀 철새도 볼 수 있다.

순천만습지 인근에는 ‘무진기행’으로 1960년대 한국소설의 감수성 혁명을 일으킨 소설가 김승옥(75)과 ‘초승달과 밤배’ 등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을 기리는 순천문학관이 있다. 순천 출신인 두 작가의 친필원고를 비롯해 각종자료를 볼 수 있다.

소설가 ‘김승옥관’과 동화작가 ‘정채봉관’이 함께 들어선 ‘순천문학관’(사진=김용운 기자).


‘무진기행’은 김승옥이 자신의 고향인 순천만을 무대로 쓴 작품. ‘무진기행’에서 그는 “수심이 얕은 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라고 무진을 표현한다. 순천만의 풍경을 빗댄 것이다. 정채봉은 “바다가 아스라이 여인의 인조비단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순천만에 가보세요. 갈대가 훌쩍 키를 넘고 있으니까요”라며 순천만을 묘사했다. 두 작가의 표현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풍경이 바로 11월 말 순천만이다.

순천에는 순천만습지 외에도 순천만국가정원이 있다. 순천만습지에서 7㎞가량 떨어져 있다. 한 곳의 입장권으로 두 곳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오전에 순천만국가정원을, 오후에 순천만습지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다만 순천만습지의 입장료는 성인 8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 두 곳 모두 ‘걷는 거리’는 만만치 않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꿈의 다리 내부(사진=강경록 기자).


◇순천에만 들르면 섭섭한 벌교 ‘꼬막’

양념장으로 간한 벌교의 ‘꼬막무침’(사진=김용운 기자).
순천만습지에서 전남 보성군 벌교읍까지는 약 25㎞.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벌교의 특산품인 꼬막에 대해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고 배릿한 맛’으로 묘사하며 여러 차례 꼬막을 부각한다.

벌교 꼬막은 굴비와 더불어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 8진미 중 1품으로 진상할 만큼 일찍부터 그 맛을 인정받았다. 꼬막은 크게 ‘참꼬막’과 ‘새꼬막’으로 나뉘는데 흔히 말하는 꼬막은 참꼬막을 말한다. 민물이 유입하는 펄에서 자라 깊은 맛이 나며 4~5년 정도 길러야 잡을 수 있다. 양식으로는 키우지 못해 펄배를 타고 갯벌로 나가 직접 채취한다. 11월부터 정월 보름까지가 제철이다.

한 상 가득히 차려낸 벌교의 ‘꼬막정식’(사진=김용운 기자).
참꼬막이 벌교에서 많이 나는 이유는 주산지인 벌교읍 장암리·대포리·장도리 일대의 순천만 갯벌이 참꼬막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지녔기 때문이다. 읍내에는 곳곳에 꼬막 전문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꼬막정식을 주문하면 짱뚱어탕에 곁들여 꼬막무침·꼬막찜·꼬막탕수육·꼬막전·꼬막구이까지 골고루 차려준다.

이밖에도 벌교에는 ‘태백산맥문학관’을 비롯해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홍교와 소설 속 ‘남도여관’의 실제모델인 보성여관 등 볼거리가 적지 않다.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태백산맥’의 흔적을 둘러보고 꼬막정식으로 배를 채우면 순천만 여행을 꽤나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전남 순천은 심리적 거리는 멀지만 물리적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수도권에서 호남고속도로와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를 갈아타면 4시간 안쪽에 닿는다. 호남선 KTX로는 3시간 남짓 걸린다. 순천시내에서 벌교까지는 88번 버스로 갈 수도 있다. 22번 국도를 타면 30분가량 걸린다.

△잠잘곳=순천 시내에 에코그라드호텔(061-811-0000)이나 장천동 일대 순천로얄관광호텔(061-746-0001), 삼보장호텔(061-741-6651) 등이 있다.

△먹을곳=승주나들목 부근의 진일기사식당(061-754-5320), 푸짐한 국밥을 내는 건봉식당(061-908-9833), 돼지떡갈비를 내는 금빈회관(061-744-5553) 등을 추천할 만하다. 벌교 내 꼬막맛집으로는 국일식당(061-858-0588), 원조꼬막식당(061-857-9919) 등이 유명하다.

순천만 일대 여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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