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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내년 대선의 시작도 노무현이고 마지막도 노무현이다.”
온통 ‘노무현’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5월 23일 서거한 이후 만 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여전히 한국 정치의 중심입니다. 현 대선국면의 주요 화두는 물론 유력 대선주자들 거의 대부분이 노무현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부동산 급등, 비선실세 의혹 등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방식은 참여정부와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7년 11월 참여정부 말기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기권 논란이 대선 1년여를 앞두고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노무현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없지만 노무현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역설적인 정치구도입니다. 한마디로 노무현은 한국정치의 여전히 살아있는 아이콘입니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노무현 때리기에 집중합니다. 19대 총선과 2012년 대선에서 재미를 본 효과만점의 전략입니다. 야당은 노무현의 발전적 계승을 다짐합니다. 이른바 ‘비욘드(Beyond) 노무현’ 전략입니다. 다만 노무현 시대의 이야기들이 2016년 한국정치에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단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새누리당 ‘2012년 대선 때도, 지금도’ 왜 참여정부를 공격할까?
새누리당은 참여정부 이후 역대 모든 선거에서 전투의 파트너로 노무현을 선택했습니다. 2007년 대선과 18대 총선이 대표적입니다. ‘노무현은 실패했다’는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OK)였습니다. 2007년 대선은 530여만표 차이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18대 총선 역시 4년 전 탄핵역풍의 치욕을 깨고 과반 압승을 거뒀습니다. 19대 총선과 2012년 대선도 비슷했습니다. 노무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은 노무현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2012년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치러진 19대 총선은 이명박정부의 레임덕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야당의 승리가 예상됐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박근혜를 앞세운 새누리당의 승리였습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이 찬성했던 한미 FTA와 제주해군기지를 친노들이 반대한다는 손쉬운 논리를 끝없이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대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권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진보정당 후보의 독자출마도 없는 완벽한 연대로 대선에 나섰지만 경제민주화를 꺼내든 박근혜의 승리를 막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2012년 대선 정국에 등장한 노무현이었습니다. 이른바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입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이 김정일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취지의 공세였습니다. 대선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NLL 포기 발언 논란은 노무현의 주권포기로 여겨지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민주당, 왜 노무현 극복 없이 노무현에만 의존할까?
민주당은 아직도 노무현의 그림자에서 단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노패권주의라는 단어가 아직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새누리당의 계파논쟁이 친이 vs 친박으로 흐를 때가 있었습니다. 19·20대 총선을 거치고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친이계는 사실상 소멸됐습니다. 노무현 서거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친노는 아직도 야권 최대 계파입니다. 친노·친문이라는 표현이 혼용되지만 친문보다는 친노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노무현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실제 노무현의 사후 영향력은 막강했습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가 대표적입니다. 천안함 폭침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야권은 노무현 서거 1주기의 추모 열기를 바탕으로 승리했습니다. 물론 너무 과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광역단체장 당선자를 살펴보면 노무현 파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광재 강원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 등은 모두 노무현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깝게 패하기는 했지만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와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 역시 노무현과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인 18대 총선에서 폐족으로 불리며 멸문지화를 당했던 친노는 야권의 전면에 섰습니다. 노무현 후광 효과를 부인하기 힘듭니다. 다만 노무현에 대한 극복없이 그에 의존한 정치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야권의 딜레마입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된 것도 어찌보면 노무현에 대한 인식 차이입니다. 민주당은 노무현의 가치와 비전으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고,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정치 세력입니다. 반면 국민의당은 노무현의 상징성은 여러 장점에도 확장성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측이 믿는 구석은 총선 성적표입니다. 필패가 우려됐던 야권분열 구도에서 민주당은 원내 제1당, 국민의당은 38석 대약진을 이뤘습니다. 위험한 도박의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도 이러한 도박이 통할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노무현에 대한 창조적 파괴와 발전적 계승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화해할 수 없는 다툼만이 있을 뿐입니다.
◇與, 노무현 재평가 분위기 vs 野, 노무현의 못다한 꿈
여야의 대립적 분위기 속에서 희망의 싹은 없지 않습니다. 노무현 시대 미완의 과제들은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여권에서는 아주 조심스럽지만 노무현 재평가 분위기가 일고 있습니다. 유승민은 지난해 4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10년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양극화 문제를 지적한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고 노무현을 칭찬했습니다. 이정현은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을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노무현의 화두는 남경필에 의해 한국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해묵은 과제로 여겨졌던 수도이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주장입니다. 야권 역시 노무현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무현’이라는 브랜드만으로는 어렵다는 인식 속에서 과거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양측의 접점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협치와 연정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습니다. 그 전제조건은 개헌입니다. 여야 유력주자들이 87년 체제의 한계를 거론하며 개헌을 강조합니다. 정계복귀 선언과 함께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가 제7공화국 화두를 던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미난 점은 우리 사회에서 개헌 논의가 가장 격렬했던 때는 참여정부 말기였습니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뭔가 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 짠함과 악몽의 갈림길에서
노무현의 시대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노무현의 통치는 정치, 외교, 경제, 언론, 부동산, 과거사 등 우리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격렬한 공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만큼 참여정부는 시끌벅적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 스스로가 수많은 논쟁적 이슈를 제기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냉전시대의 낡은 유물”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었습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버티기 논란을 보면서 대통령 임기 첫해 호기롭게 평검사와의 대화에 나섰던 노무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역설적이지만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의 이슈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오롯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는 누군가에게는 미안함과 짠함입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하기 싫은 악몽 그 자체입니다. 짠함이든 악몽이든, 노무현 시대의 이슈와 과제들이 대결의 논리가 아니 통합의 논리로 대선국면에서 성찰된다면 한국 정치도 한 걸음 더 진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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