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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자체장들 중에서 한 분이 현 제도 안에서 노력하겠다며 주민세를 1만원으로 인상했다가 주민들이 ‘다른 지자체들은 안 올리는 데 혼자 왜 올리냐’라고 반발해서 다음 선거에서 낙선한 사례가 있어요. 지자체들이 주민세 인상 상한선을 걸어 놓으면 주민 반발로 절대 못 올리니까 법제화해서 하한선을 정하고 지자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정할 수 있게 요청하자고 해서 만든 법안이었지요.”
행자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주민세 개인 균등분 1만원 이내에서 지자체가 세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을 1만원 이상 2만원 이하(2015년은 7000원)로 상향 조정하고, 자동차등록세는 3년간 50%→70%→100%로 인상하는 게 골자다. 현재 주민세는 전국 지자체 평균이 4600원이다. 10년 넘게 변동이 없다. 주민세·자동차등록세 인상은 무상보육 등으로 구멍 난 지자체 재정을 일부라도 메우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한선을 정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니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합의해 상한까지 올려나가야 할 겁니다. 저희도 그렇게 유도해 나갈 겁니다. 지자체장들이 강력히 요구하고 야당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이상 중앙정부가 다시 앞장서 추진하기는 어렵겠지요.”
“민주국가에서 복지국가로 패러다임 바꿔야”
정 장관이 취임 이래 공을 들이고 있는 게 행정조직 개편 작업이다. 정 장관은 정부조직이 어떻게 구성돼 있느냐에 따라 정부가 가진 미래 비전과 국가 비전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기능도 우리 사회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맞춰야 합니다. 국가 기능 전체를 평가해 기능을 재조정해야 합니다. 필요한데 없는 기능이 있다면 만들어야 하고, 불필요한데도 남아 있는 기능이 있다면 없애야지요.”
이 같은 차원에서 첫 번째로 꼽힌 구조조정 대상이 정부 위원회다. 행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정부위원회는 537개다. 그러나 이 중 38%는 1년에 한차례 회의를 여는 데 그치는 등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 행자부는 정부 위원회를 전수 조사해 기능이 중복되거나 이미 필요성이 상실된 위원회는 통합·폐지하는 등 정부 위원회의 20%가량을 정비할 계획이다.
“어떤 지역에 가보면 면 단위 인구가 2만 5000명인데 관리하는 공공시설이 엄청나게 많아요. 공공시설 관리 인원만 140명씩 됩니다. 1년에 시설 유지비와 급여만으로 65억원 이상 소요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불필요한 곳에 투입된 인력을 빼서 다른 곳에 재배치해야 합니다. 각 지자체 간 인력 교류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자부는 기초생활단위인 읍면동 2~3개를 1개로 통합하는 대동(大洞)제를 추진 중이다. 통합되는 읍면동사무소 중 한 곳은 행정 업무를, 나머지 한 곳은 복지 업무를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 군포시와 시흥시, 강원도 원주시 등에서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정 장관은 “대동제 시범사업 등 지자체 행정조직 혁신 작업은 단순히 행정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방자치제도가 민주주의 패러다임에서 국민행복 패러다임으로 바뀌는데 지자체 행정조직 혁신 작업이 단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민이 뽑은 지자체장이 주민의 뜻에 따라 행정을 펼치는 민주적 지방자치였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어떤 행정조직이 어떤 행정을 펼쳐야 주민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 고민하는, 주민 행복을 위한 지방자치가 돼야 한다는 게 정 장관의 얘기다.
“주민자치, 지방자치는 이미 뿌리내렸어요. 이제는 민주국가 패러다임에서 복지국가 패러다임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일례로 지자체장들이 공단이나 공장을 유치하면 지자체장으로서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는 데 해외 사례를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지역사회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 지역 특색과 공동체 문화에 맞게 지역 발전을 이끌어야 합니다. 공장이 들어선다고 주민들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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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은 “법령에 정해져 지자체가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항목들까지 삭감이 이뤄졌다”며 “지방의회가 지자체장에게 힘을 보여 주려고 권력을 남용한 것이다.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로서 법에 정해진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국가기관은 권한을 갖고 있고, 권한은 맡겨진 일을 하기 위해 공직자에게 부여된다. 하지만 이 공직자가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할 때 권력이 된다. 권한을 부여받은 공직자가 법과 원칙에 따라서 권한을 집행한다면 개인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만, 자의적으로 이를 남용하는 순간 권력으로 변질돼 오남용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입법·사법·행정부로 나뉘어 서로가 독립성을 보장받고 견제하듯이 지방자치제 아래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권력 통제가 필요합니다. 중앙정부는 법적인 권한 내에서 지자체의 자치에 관여하는 것이지 결코 자치권을 침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개입한 것은 아닙니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1957년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연세대 대학원에서 헌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육군법무관으로 일하다 1989~1995년까지 6년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때문에 한학에 조예가 깊다. 문화재청 사적분과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2013년에는 국가 유산의 체계적인 보호를 위해 설립된 국가유산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40여년간 서예를 해온 서예가로 대구 대견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사찰 현판과 주련을 쓰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행정자치부 장관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