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모인 것은 호남 고속철도 차량기지 공사 입찰에 앞서 사전에 투찰률을 모의하기 위해서다. 한 시간 가량의 논의 끝에 3개사는 ‘사다리타기’로 추첨을 해서 각사의 투찰률을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투찰률은 낙찰 예정금액 대비 업체들이 써낸 가격 비율을 말한다. 투찰률이 높을수록 낙찰될 가능성도 커진다.
사다리를 탄 결과 3개사의 투찰률은 94.85%(대우건설), 94.79%(대림산업), 94.76%(삼성물산)로 정해졌다.
서로가 못 미더웠던 세 회사는 사다리타기로 뽑은 투찰률대로 실행하는 지 확인하기 위해 경쟁사 직원 참관 하에 투찰을 진행했다.
그 결과 차량기지 건설공사는 대림산업이 3018억원에 따냈다. 대우건설보다 설계점수는 낮았지만, 싼 가격을 적어내 가격 점수를 높게 받은 탓이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삼성물산은 가격 점수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설계점수가 경쟁사보다 크게 낮아 입찰에서 꼴찌를 했다.
이 자리에서 각사 영업담당자들은 추첨을 통해 공구별 낙찰 예정자를 정했다. 추첨에서 떨어진 회사들은 들러리를 서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며칠 뒤에는 낙찰예정자로 뽑힌 13개사의 영업 담당자들이 한 차례 모임을 더 가졌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입찰 가격이 설계 금액대비 76% 수준이 되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결국 호남고속철도 신설공사는 짬짜미를 한 13개사가 각자 원하는 곳을 가져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입찰 짬짜미’가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연루된 건설사만 28개사이고, 과징금 규모는 무려 4355억원에 달한다.
입찰 담합 건으로는 역대 최대 과징금 액수. 지금껏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전체 사건 중에서도 LPG 가격 담합 건(약 669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과징금 액수는 삼성물산(000830)이 836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대림산업(000210)(647억원), 현대건설(000720)(598억원) SK건설(248억원), 동부건설(005960)(220억원), 한진중공업(097230)(206억원), 포스코건설(200억원) 등의 순이었다.
이밖에 GS건설(006360)(193억원), 롯데건설(169억원). 두산중공업(034020)(166억원), 두산건설(011160)(126억원), 대우건설(047040)(122억원), KCC건설(118억원) 등도 1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담합을 주도한 대림산업과 대우건설, 삼성물산,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빅7사의 담당임원 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중원 공정위 상임위원은 “이번 조치는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담합관행을 시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국가 재정에 피해를 주는 공공 입찰담합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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