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책임성' 강조하는 헌재…지위 따라 강도 달라[尹 탄핵소추]

단순 위법 아닌 중대한 헌법침해시 파면 결정
盧 선거중립위반 '기각'·朴 국정농단 '인용' 판단
최근 '공직자의 책임성' 엄격 심사 경향 나타나
  • 등록 2024-12-15 오전 11:42:36

    수정 2024-12-15 오전 11:42:36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헌법재판소가 역대 다뤄온 주요 탄핵심판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최근 탄핵심판에서는 공직자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하면서 공직자의 지위에 따라 심사 강도가 달라지는 특징도 나타났다. 일관되게 지켜온 핵심 기준은 ‘법 위반의 중대성’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임성근 전 법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탄핵심판에서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닌,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위반이어야 한다”는 일관된 기준을 제시해왔다.

특히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상반된 결론을 내리며 ‘중대성’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다.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의 특정 정당 지지 발언에 대해 “법 위반은 인정되나 헌법질서 파괴 의도가 없어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사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등 법치주의를 중대하게 훼손했다”며 파면을 결정했다.

대통령과 일반 공직자, 심사 강도 차이

탄핵심판에서는 공직자의 지위에 따라 심사 강도가 달라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통령의 경우 가장 엄격한 심사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는 대통령 파면이 갖는 헌법적 무게 때문으로 풀이된다. 헌재는 “대통령 파면은 국민이 선거로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하는 것이고, 국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행정 각부 장관이나 법관 등에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기준이 적용됐다. 최근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예방조치와 대응에 일부 미흡함은 있었으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정섭 전 검사의 경우에도 재판 증인 면담 과정에서 공정성 훼손 문제가 제기됐으나, 당시 관련 법령상 금지규정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직무관련성’ 요건도 탄핵 사유 인정의 중요한 기준이다. 헌재는 “탄핵 사유는 반드시 직무집행에서 발생한 법 위반이어야 하며, 사적 영역에서의 법 위반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임성근 전 법관 사례에서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임기만료로 퇴직하자 탄핵심판도 종료됐다. ‘해당 공직’을 더 이상 보유하지 않아 파면의 실익이 없다고 본 것이다.

탄핵소추 절차와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판단이 있다. 헌재는 “국회의 의사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며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에서 조사나 토론이 부족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위법이 아니라고 봤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국회의 의사진행의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존중되어야 한다”며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과정에서 조사나 특검 수사결과를 기다리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1명이 궐위된 상태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한 바 있다. 당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상태였지만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중 결원이 발생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헌법 수호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명확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공직자 책임성’ 더 엄격히 따지는 경향 보여

최근 탄핵 사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공직자의 책임성이 더욱 강조된다는 점이다. 이상민 전 장관 탄핵심판에서는 재난안전 주무부처 장관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이행 정도를, 이정섭 전 검사 사건에서는 공익의 대표자이자 인권옹호기관으로서 검사의 공정성과 성실의무 준수 여부를 꼼꼼히 따졌다. 특히 ‘공직자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특정 세력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같은 선례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가 일관되게 제시해온 ‘중대한 법 위반’ 기준에 비춰 이번 탄핵소추 사유들이 과연 대통령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16일 재판관회의를 열고 주심 재판관을 배정하는 등 사건처리 일정을 논의한다. 주심 지정은 컴퓨터 전자 배당 시스템에 의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이뤄진다. 주심은 비공개가 원칙이나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사건이 접수된 이후 주심을 공개한 바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지난 14일 오후 5시께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00명 중 찬성 204표로 가결됐다. 이후 6시15분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헌재를 방문해 ‘대통령(윤석열) 탄핵’ 사건을 접수했다. 사건번호는 ‘2024헌나8’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가결된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를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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