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홍콩 팬의 가슴이 뜨거워진다…'빵탑' 오르는 청차우 섬 [여행]

홍콩 본섬과 다른 청차우 섬의 독특한 분위기
다채로운 색상의 고기잡이 배로 가득한 부두
길거리 음식과 싼 해산물 요리의 천국으로 인기
고요한 분위기의 청차우 기독교 묘지서 평화를
북쪽 전망대에서 만나는 섬의 절경에 황홀해져
섬의 '청차우 빵 축제'에서는 탑 오르기 경기도
  • 등록 2024-10-11 오전 6:00:00

    수정 2024-10-11 오전 6:00:00

청차우 해산물 거리의 노천 레스토랑
[홍콩 글·사진=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이소룡과 성룡이 주연을 맡았던 옛 홍콩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어촌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홍콩 본섬에서 약 10㎞ 떨어진 청차우 섬은 홍콩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이 지금도 촬영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로 가득한 청차우 섬은 올드 홍콩 팬들의 추억을 자아내는 여행지로 남아 있었다.

이토록 오래된 홍콩의 풍경

섬의 최대 번화가인 싼힝 프라야 스트리트
위풍당당한 고층 건물로 상징되는 홍콩이지만, 바다 건너 섬으로 가면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홍콩섬 센트럴 페리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배로 약 35분(고속선 기준)에서 55분(일반 페리 기준) 정도면 도착하는 청차우 섬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1918년에 찍힌 사진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건물들도 볼 수 있다.

섬의 최대 번화가인 싼힝 프라야 스트리트에는 해산물 레스토랑, 편의점, 먹거리 상점,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이 빼곡하다. 폭이 좁고 높은 건물이 많은데 1층은 상점, 2층 이상은 거주민이 사는 곳으로 밖에 널어놓은 빨래가 현지인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청차우 섬의 바다를 가득 메운 배들
길 건너 바다는 고기잡이 배로 꽉 차 있다.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등으로 칠한 배들이 어지러이 정박된 부두는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파도에 흔들리며 둥실둥실 뜬 배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에 저절로 평온함이 깃든다. 도로가 좁아서 경찰차나 구급차, 소방차 등을 제외하면 자동차가 없는 곳이라 자전거를 대여해서 타기가 좋고, 섬이 작아서 그냥 걸어 다녀도 큰 불편이 없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80~9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청차우 섬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해산물 요리 (사진=홍콩관광청)
청차우 섬에서 음식을 빼면 섬의 즐거움을 상당 부분 놓치는 셈이다. 청차우 해산물 거리에는 달콤한 망고가 들어간 부드러운 찹쌀떡부터 카레 맛 어묵, 오징어 구이, 강아지 꼬리처럼 생긴 면발을 담은 도기 누들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특히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홍콩 도심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별한 인테리어 없이도 바다를 바라보며 노천에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청차우 해산물 거리의 노천 레스토랑
한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새우, 장어, 칠리크랩, 달팽이요리, 닭튀김, 우육탕 등 요리 개수가 80여 종을 넘는다. 메뉴는 개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두 개부터 선택할 수 있고 최저 188홍콩달러(약 3만 2000원)부터 시작한다. 재료에 상관없이 음식 개수로만 정산하는 만큼 이왕이면 비싼 재료의 메뉴를 공략하는 것이 최고의 가성비를 얻는 비결이다. 옆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어니언크랩과 공기밥이 포함된 마파두부에 맥주 큰 것을 함께 시켰더니 220홍콩달러(약 3만 8000원)가 나왔다. 홍콩 본섬에서 게 요리 하나에만 168홍콩달러(약 2만 9100원)를 낸 것을 고려하면 더 다양한 메뉴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셈이다. 가격이 싸고 맛도 괜찮다 보니 낮부터 식당에 앉아 맥주를 곁들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가격 경쟁력 덕분에 청차우 섬은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섬 전망대에서 비경을 만나다

청차우 북쪽 전망대에서 본 바다
청차우 섬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하이킹 코스다. 섬 최고 높이의 전망대인 ‘청차우 북쪽 전망대’는 페리 터미널에서 도보로 30분 정도면 닿는다. 가장 높다고 하지만 고도가 100m를 조금 넘는 만큼 산악 지형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산책 코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바다의 수호신을 모신 ‘팍타이 사원’
전망대로 오르다 보면 바다의 수호신을 모신 ‘팍타이 사원’이 나타난다. 1783년에 지은 건물로 예스러운 건축 양식이 눈길을 끄는데 빨간 지붕에는 녹색 몸통의 용 두 마리를 올렸다. 내부에는 청·송 시대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청차우 섬을 대표하는 ‘빵탑 오르기’ 행사가 이 사원 앞 광장에서 열린다.

1931년에 만들어진 ‘청차우 기독교 묘지’
하늘을 가리던 숲길을 지나면 1931년에 만들어진 ‘청차우 기독교 묘지’가 나온다. 1931년에 문을 연 이 묘지는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고 있어서인지 을씨년스러운 느낌보다 평온함이 더 짙게 다가온다. 이곳의 또 다른 주인은 들개다. 묘지석 주변에서 쿨쿨 자는 개들의 모습은 이곳이 망자들의 안식처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한다.

청차우 북쪽 전망대와 주변 풍경
조금만 더 올라가면 드디어 목표인 전망대가 나타난다. 중국 전통 양식의 정자가 자리한 전망대에서 주변을 보고 나니 ‘안 왔으면 후회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멀리 퉁완비치와 남부 섬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여 눈이 시원해진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장관에 사진을 찍는 손이 쉴 틈이 없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바다 건너 라마섬과 칭마대교까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몰 시에는 바다가 불타는 듯한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서 오후 시간에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청차우 빵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빵탑 오르기 행사를 그린 벽화
내려가는 길에 방향을 틀어 전망대에서 본 퉁완비치로 향했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긴 해안선이 아름다운 곳으로 카약과 윈드서핑을 즐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해변 근처에 흥미로운 디자인의 벽화가 많아 포토존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청차우 섬의 명물인 붉은 글자를 찍은 빵.(사진=홍콩관광청)
섬의 여행 성수기는 ‘청차우 빵 축제’(Bun Festival) 기간이다. 매년 음력 4월 8일에 열리는 행사로 전통 의상을 입은 어린이들이 연을 매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퍼레이드를 비롯해 다양한 의식과 행사가 진행된다. 하이라이트는 빵을 가득 매단 탑을 오르는 ‘번 타워’ 행사다. 참가자들은 탑 끝까지 올라가 자루에 빵을 담는데 빵마다 각기 다른 점수가 적혀 있어서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참가자에게 우승이 돌아간다. 탑에 매다는 붉은 글자를 찍은 빵은 이제 청차우 섬을 상징하는 명물 음식이 됐다. 내년 축제는 5월 5일에 열릴 예정이며, 축제 기간에는 홍콩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몰려 배를 타기조차 어려우니 미리 배편과 숙소 등을 예약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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