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워스트레이팅 순위권에 오른 기업은 재무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워스트레이팅은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신용등급 평정의 적정성을 묻는 설문이지만, 설문 결과에는 절대적인 기업의 크레딧 리스크가 반영된다. 재무 여력이 떨어져 구조조정 절차로 갈 수도 있겠다는 시장 내 위기감도 집계돼 있다는 뜻이다.
23회 워스트레이팅 1~5위권에 오른 기업 중 3곳은 설문에 들어간 직후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이 조정됐다. 전체 응답자 141명 중 35명(24.8%)이 지적해 2위에 오른 이랜드리테일과 이랜드월드는 모두 신용등급은 ‘BBB+’를 유지한 채 등급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랜드리테일은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저하로 자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 점이, 이랜드월드는 자구계획이 늦어지는 데 따른 재무부담과 뉴발란스 브랜드의 실적 저하, 중국 패션 부문의 경쟁력 약화 등이 반영되면서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전환했다.
33명(23.4%)이 지적해 3위에 오른 대한항공(003490)과 한진해운(117930)은 대한항공의 경우 신용등급은 ‘BBB+’를 유지했지만 등급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됐고 한진해운은 ‘BB+ 안정적’에서 ‘B- 하향검토’로 강등됐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의 신용 위험에 따른 지원 부담이, 한진해운은 해운업 불황과 이에 대처하지 못해서 초래된 스스로의 신용 위험으로 등급과 등급전망이 조정됐다.
25명(17.7%)이 선택해 네 번째로 많은 지적을 받은 아주캐피탈(033660)은 등급은 ‘A+’를 유지한 채 등급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자동차금융 시장에서 할부리스업체 간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수익 기반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 때문이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워스트레이팅 10위권 내 기업은 대부분 조선, 해운, 건설 등 정부가 구조조정 방향을 수립하는 경기민감업종에 속하는 곳들이다.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간 현대상선이나 급격히 재무 상황이 악화한 대우조선, 동국제강(001230) 등은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면서 설문 대상 기업 명단에서 제외됐다.
몰표 나온 두산 계열…2회 연속 1위 불명예
23회 SRE 워스트레이팅 1위는 두산그룹 계열(두산중공업(034020)·인프라코어·건설)이다. 22회에서도 1위를 차지한 두산 계열의 응답률은 25.2%에서 36.2%로 10%포인트 이상 올랐다. 전체 응답자 141명 중 51명이 선택한 것으로 몰표가 나온 것이다. 크레딧애널리스트는 36.9%, 비 크레딧애널리스트(채권매니저·브로커 등)는 35.5%가 선택, 고르게 몰아주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 발전설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두산중공업은 지금과 같은 수익성을 유지하면 개별 기업으로서는 재무구조가 나빠질 리스크는 크지 않다는 게 크레딧시장의 분석이다. 문제는 부실한 자회사들이다. 한진해운의 신용 위험이 대한항공의 크레딧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듯 두산중공업도 두산인프라코어(042670)와 두산건설(011160)의 지원 주체로 나서면서 신용도에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과 뉴발란스 기대했지만…고전하는 이랜드
이랜드그룹의 지주사와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는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은 24.8%의 득표율로 2위에 올랐다. 이전 22회 SRE에서 17.0%의 표를 받았던 것에 비해 시장 내 불신이 커지는 모습이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은 재무구조를 나빠지게 만들었고 성장세를 이끌던 중국 패션사업은 고전하고 있다.
이랜드월드의 국내 패션사업 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뉴발란스 브랜드의 영업이익률이 6.7%포인트 줄어든 탓이 컸다. 중국 현지법인 3사를 합산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 추정치는 2011년 17.2%에서 지난해 절반가까이 떨어졌다. 중국 내 소비 침체로 백화점보다는 할인점과 온라인 구매를 주요 쇼핑 채널로 활용하면서 이용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대한항공, 한진해운 구조조정 이후가 궁금하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득표율 23.4%로 3위에 오른 것은 한진해운이 산업은행에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전에 설문을 진행한 결과다. 한진해운에 대한 대한항공의 재무적 지원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대한항공은 ‘BBB+’ 등급도 버겁다는 것이 채권시장의 시각이었다.
이런 부담을 대한항공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표정 관리를 하고는 있지만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로 대한항공은 웃을 일이 많아질 조짐이다. 신평사들은 한진해운이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간 재무 위험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대한항공 신용도에는 긍정적일 것이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급부상한 아주캐피탈과 꾸준한 5위권 산은캐피탈
삼성중공업, 삼성에 드리우는 구조조정의 그림자
조선업의 업황 악화의 결과이지만 삼성그룹 자회사가 5위권안으로 급부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이 지난해 3조원대 대규모 손실을 털기 전부터 삼성중공업은 이미 손실을 털었다. 이 때문에 추가 손실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지만 국제 유가 하락이 계속되고 조선 빅3의 수주실적이 가뭄에 콩나듯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수주절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한 SRE 자문위원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010140)의 수주잔고가 올해 하반기면 사실상 조업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조선사 간 합병 등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쪼개보니 리스크가 보인다’ LS그룹, 첫 등장에 9위
LS(006260)와 LS전선 계열은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LS네트웍스를 별도 설문 종목으로 나눴음에도 14.2%의 표가 몰려 9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10위를 차지한 현대중공업계열사보다도 높은 순위다.
SRE 자문위원은 “LS그룹은 전체로 연결해서 보면 별다른 재무적 위험이 없어보이지만, 오너 일가 형제들이 나눠 가진 계열사 예스코, E1, 가온전선, LS 등으로 쪼개보면 다소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3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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