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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10년 전인 2009년 3월 7일 고(故) 장자연씨는 사회 유력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자필 문건을 남기고 숨졌다. 장씨가 남긴 문건이 발견된 것은 엿새 뒤인 3월13일. 성상납 강요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이튿날 압수수색에 나섰다.
당시 압수수색에 걸린 시간은 57분에 불과했다. 침실 위주로 압수수색하고 옷방은 수색조차 하지 않았다. 장씨가 들고 다니던 가방은 열어보지도 않았고 압수물은 컴퓨터 본체 1대, 휴대폰 3대, 메모리칩 3점, 다이어리 1권, 메모장 1권, 스케치북 1권이 전부였다.
김씨의 강요죄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술 접대 및 성상납 등 문건 속 유력 인사들의 강요방조죄 혐의 역시 성립될 수 없었다. 폭행·협박 혐의가 인정된 김씨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장자연 리스트’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세상에 공개한 유씨는 김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및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반면 리스트에 거론됐거나 장씨 유족이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유력 인사들은 결국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접대를 받았다고 폭로된 이들 중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 사건은 지난 10년 동안 검·경의 대표적 ‘부실 수사’ 사례로 꼽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 과거사위원회 발족과 함께 이 사건 역시 재조사 목록에 포함됐다. 당시 검·경 수사 관련 의혹을 재조사해 온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이달 말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사단은 지난해 10월 28일 중간 조사 결과 발표에서 “(수사가) 진실을 밝히려 했던 건지 덮으려 했던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장씨의 수첩 등 자필 기록과 명함 등은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인데 경찰의 초기 압수수색 과정에서부터 다수 누락됐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경찰의 초기 수사가 왜 부실했는지, 사망 전 1년치 통화내역이 수사기록에서 왜 사라졌는지 등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10년이 흘렀지만 강제 수사권이 없는 조사단이 여러 의혹들을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군다나 강요·성매매 알선·성매수·강제추행 등 사건 당시 검찰이 불기소한 혐의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사법적 단죄는 이미 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