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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2년 전부터 금융 공기업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최동훈(28)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설날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이번 만큼은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취업은 했냐”는 친척들의 질문과 불편한 분위기를 견뎌낼 자신이 없다. 최씨는 “취업했냐고 직접 묻지 않더라도 서로 말조심 하는 분위기마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명절은 늘 괴롭다. 친척들과 만나 새해 덕담을 주고 받다가도 취업 얘기라도 나오는 순간 요즘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의 준말)`가 된다. 구박이나 눈치를 주는 친척이라도 있으면 기껏 집까지 내려가 낮아진 자존감만 챙겨가는 꼴이 된다. 이들에게 도서관과 학원, 스터디 공간 등은 좋은 피난처다.
“취업여부 묻지 않아도 분위기 자체가 부담”
서울에서 3년째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전모(29)씨는 이번 설날에 고향인 경주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도서관에서 상반기 공채를 준비할 예정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 만큼은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꼬박꼬박 고향에 내려갔던 그였다. 전씨는 “지난해 하반기 취업을 마무리 하고 설 연휴에 내려가려 했지만 취업에 실패했다”며 “취업준비 3년째를 맞게 되니 가족들에게 얼굴 보이기가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모든 학기를 마치고 졸업 유예 중인 박모(25)씨는 “솔직히 명절에 못 내려갈 정도로 취업 준비가 바쁜 상황은 아닌데 고향에 내려가 취업한 또래 친척들과 비교되는 분위기가 싫다”며 “서울에 혼자 남으면 할 것도 없고 도서관이나 가는 것”이라고 했다.
설날 특강·강의실 개방 학원 찾는 취준생들
지난해부터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정모(24)씨는 “주변 준비생 중 연휴에 집에 간다는 사람은 아직 못봤다”며 “집에 내려가면 안 좋은 소리만 더 듣는다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 특강을 신청해 공부를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7·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27)씨는 “부모님 눈치도 있지만 9급 국가직 시험이 당장 3월에 있기 때문에 명절에 내려갈 겨를이 없다”며 “현장 특강은 신청하지 못했고 독서실에서 온라인 특강으로 공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예 자습공간에 `명절 대피소`로 제공하는 학원도 있다. 파고다어학원은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강남·종로·신촌·인천·부산 등 총 5개 지점의 강의실·열람실을 개방한다. 학원 관계자는 “연휴 기간 귀성하지 않은 취업 준비생들과 대학생들에게 스터디 공간과 간식·음료 등을 제공한다”며 “주로 상반기 공채를 앞둔 취준생과 대학생들이 명절 대피소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