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 제공] 독한 역이 어려울까, 순한 역이 어려울까. 당연히 둘 다 어렵다. 배우에겐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것과 비슷한 질문일 터다.
그래도 김윤석(42)은 후자가 조금은 더 어렵다는 반응이다. 신작 <거북이 달린다>에서 맡은 형사 조필성은 순한 역에 가깝다.
느물느물한 형사가 지독한 범죄자를 뒤쫓는다는 설정 때문에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의 전작 <추격자>에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추격자>가 서울의 밤거리처럼 으스스하고 각박했던 반면, <거북이 달린다>는 배경인 충남 예산처럼 한가하고 여유롭다. 김윤석은 “온도로 얘기하면 따뜻하다. 드라마와 코미디의 균형 감각이 절묘했다”고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순간의 느낌을 돌이켰다.
형사 조필성이 근무하는 충청도 예산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곳이다. 영화 속 경찰의 당면 과제는 소싸움 축제가 탈없이 끝나도록 돕는 일이다. 기가 센 다섯 살 연상의 아내(견미리), 두 딸을 건사하는 가장인 조필성은 적당한 뒷돈을 받을 만큼 ‘구린’ 구석이 있지만 크게 나쁜 짓을 할 만한 악당도 아니다. 이 조용한 동네에 신출귀몰한 탈주범 송기태(정경호)가 나타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필성은 경찰로서,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기태를 제 손으로 잡아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다.
몇 차례의 액션 장면이 나오지만, 세련된 요즘 젊은 관객의 눈을 잡아끌 만한 기교는 배제했다. 김윤석은 “화려한 액션보다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무술 감독이 ‘이건 너무 멋있어서 안된다’고 제지한 동작이 많아요. 애는 쓰는데 자세는 안나오는 액션을 하려고 무지 애썼어요.”
“제가 싫어하는 단어를 쓰자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스크린을 압도하는 연기’는 오히려 쉽습니다. <즐거운 인생>이나 <거북이 달린다> 같은 보통 사람 연기가 더 어려워요. 연기의 표현 영역을 낮은 도부터 높은 도까지라고 치면, <추격자>나 <타짜>는 높은 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거북이 달린다>는 도레미 딱 3개의 음으로 표현해야 하거든요.”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한밤의 소싸움장에서 벌어지는 탈주범과의 대결이다. 낮에 소싸움한 곳에서 밤에 영화를 찍었는데, 다음날 경기에 나갈 소들이 잠못잔다고 소주인들의 항의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경호하고 흙바닥을 구르면서 한참을 연기하는데 이상하게 손바닥이 축축해요. 스태프들은 시골이라 이슬이 내렸다고 그랬는데 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알고 보니 낮동안 싸운 수십 마리 소들이 싸놓은 소똥이 손에…. 소똥은 재수좋다고 웃어 넘겼죠.”
차기작은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블록버스터 <전우치>다. 그는 “얼마전 세상을 뜬 정승혜 대표와 멜로 영화 하나 진하게 하자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여성 관객에게 호소할 만한 멜로 배우로서의 매력에도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진솔하게 다가갈 거예요. 진솔하게. 그런데 요즘 여자분들이 진솔한 거 좋아하나요?(웃음)”
<거북이 달린다>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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