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는 경영진의 양심에만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금융감독당국의 회계감리 시스템이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지요. 회계감리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원이 뭘 잘못했다는 얘긴 아닙니다. 금감원이 회계감리를 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회계감사를 받는 회사는 2만 4000여곳이 있습니다. 이들의 분식회계를 감독하는 금감원 전문 인력은 몇 명이나 될까요? 30여명이 고작입니다. 이들은 한 해 평균 1인당 5개 기업을 감리하는 데요, 따져 보면 감사 대상 기업은 160년에 1번씩 분식회계 여부를 검사받는 셈입니다. 핼리혜성은 75년에 1번씩 지구를 찾아오는데요, ‘분식회계 방범’이라는 회계감독 인력이 손전등을 들고 찾아오기까지는 그보다 2배의 세월이 더 걸린다는 소립니다.
우리나라 금감원은 자금 추적도 할 수 없고 수사권이 필요한 압수수색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작정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들은 자금 흐름을 추적해야만 알 수 있도록 통장도 꾸며놓기 일쑤인데요, 이런 건 금감원이 적발할 수도 없습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을 전 세계 평가대상국 60개 중 58위로 발표했는데요, 인구 1000만규모 대도시에 동네 파출소 수준의 방범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우리 회계감독 시스템도 분명 회계 투명성 꼴지란 오명에 한몫했을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내부고발과 자진신고입니다. 최근 수출입은행 ‘히든챔피언’이었던 코스닥 상장사 우양에이치씨(101970)는 전 경영진의 분식회계 행위를 스스로 공시했습니다. 이 회사에는 금융감독당국에 분식회계를 신고한 내부고발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 분식회계 파파라치 제도는 신고자에게 최대 1억원의 포상금을 내리고 있습니다. 포상금을 받으려면 위조한 은행 서류 등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고발자가 아니면 포상금을 받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1억원 정도의 포상금을 받기 위해 평생 직장을 잃을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할 직원이 있을까요?
결국 경제를 살린답시고 작은 정부, 규제 완화를 지향했던 논리가 세계 꼴찌 수준의 회계감독 시스템을 만든 셈입니다. 감독 인력을 늘리고 이들 전문 인력이 샅샅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며 내부고발자에게도 통 큰 지원을 해준다면, 그 뒤에도 회계 투명성이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할까요? 그땐 아마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와 같은 코너가 필요없는 세상일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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