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나약하면 안 된다는 통념이 있어 3,40대의 남성의 우울증은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거나 실제로 자신의 증세를 인식하더라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이민수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2주 이상 수면이나 식사, 행동, 생각, 신체 등에 영향을 미쳐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초래하게 되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은 뇌의 질병으로 뇌 속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거나 부조화를 이룰 때 발생한다. 더불어 계절변화에 따른 일조량과도 연관성이 깊은데, 이것이 바로 가을에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인체가 활동할 수 있는 낮 시간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햇볕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신경전달물질의 하나로 주로 밤에 분비되며 수면 등 신체 리듬과 관련이 있다)’의 양이 많아진다. 이 호르몬 양의 증가로 생체 리듬이 깨지고 이로 인해 우울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남성을 더욱 남성답게 해주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다른 계절보다 가을에 많이 분비되면서 가을에 남성들이 기분이 가라앉는 등 감정적인 변화를 겪고,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여성보다 자살 위험성이 더 높은 남성 우울증
우울증은 심리적으로 나약해진 것이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만으로 좋아지기 힘들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낫는 것이 아니다. 특히 남성에 있어서는 단순히 감정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흥분 증세를 보일 수도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이 심화되면 소화불량, 두통, 요통, 근육통, 과호흡 등 다양한 질병이 오기도 하고, 정상인에 비해 심근경색의 위험과 사망률도 높다.
하지만 우울증 자체만으로도 위험성은 심각하다. 초조, 후회, 죄책감, 절망감, 우울한 망상은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는 무엇보다 자살 예방을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남성 우울증은 여성 우울증에 비해 자살 위험성이 더욱 높다. 자살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은 여성 환자이나, 실제 자살에 이르는 경우는 남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남성 우울증은 더욱 위험하다.
일상생활 속 우울증 원인 제거 노력 필요
우울증은 약물치료와 정신과 치료가 병행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약물치료는 신속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으나, 일상적인 문제나 부담감(스트레스)에 대해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생활하도록 한다. 스스로 취미활동을 찾고, 주변 사람들과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거나 규칙적인 생활,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면서 “이밖에도 산책이나 여행 등 야외활동도 우울증 예방에 좋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남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환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환자의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은 물론 주변인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