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잦은 설계 변경에도 선주측 보상 규모가 확정되지 않아 원가 상승분을 미리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제품 공정률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에나 정확한 손실 규모 산출이 가능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2분기 3조원대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면서 낸 보도자료의 한 구절이다. 감사원의 대우조선 감사 결과 브리핑에서 밝힌 논리로 따지면 대우조선은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을 온 국민 앞에 선언한 것과 같다. 대놓고 바보짓을 했단 얘기다. 감사원은 ‘선주 측 보상 규모가 확정되지 않아 원가 상승분을 미리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회계기준 위반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대우조선 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합리적으로 총예정원가를 계산하려면 발주처의 보상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설계 변경에 따라 원가비용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면 이를 총예정원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우조선 내규와 업무기술서에 따라 해양플랜트를 만드는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비용을 총예정원가에 반영해야 하는데 발주처가 보상을 거부하는 데도 마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해 예정원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은 회계규정을 위반한 것이란 의미다.
감사원과 대우조선의 논리를 종합하면, 대우조선은 결국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을 분식회계 의혹을 해명하는 논리로 주장해 온 것이 된다. 교묘하게 분식회계 정황을 감춘 게 아니라 아예 분식회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고백한 셈이다.
금감원은 감사원이 지적한 정황대로 분식회계가 일어났고 대우조선 재무담당자들이 분식회계인지도 모르고 회계처리한 것이 맞다고 가정하면, 이는 ‘고의성’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성적표를 칼로 긁어 고치는 건 고의적이지만 공부를 아예 못하는 것이 고의성 있는 범죄라고 보긴 어렵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만 규모 있는 상장사이자 우리나라 빅3 조선사 중 한 곳이 그 정도의 회계 지식도 없었다는 것은 어쨌든 무거운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는 있다.
물론 이런 ‘대놓고 한 바보짓’을 누군가의 의도적인 지시에 따라 했다면 고의성이 성립될 수 있다. 검찰과 금감원은 감사원이 감사 결과에서 밝힌 분식회계 정황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회계기준에 맞지 않는 지시를 누가 했느냐를 밝혀야 고의성 여부를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 이외에도 분식회계 규모는 더 많이 나올 수 있고, 다른 이유의 분식회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회계감리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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