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KT 회장은 어디갔나

  • 등록 2012-08-13 오전 9:36:59

    수정 2012-08-13 오후 3:15:18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2008년 7월24일,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석종훈 사장 등 고위 임원들이 서울 홍익대학교 소재 다음 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메일에서 다른 사람의 메일 내용이 보이는 초유의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사과,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최고경영자(CEO)가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신속히 나선 이유는 당시 서비스 장애의 원인이 해킹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10일 KT(030200)는 870만명 회원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표현명 사장과 송정희 부사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플래시 세례를 받았지만 KT 고객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기자회견 후 온라인 댓글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는 “범인이 잡힌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사과하느냐” “(이석채)회장이 직접 나서라” 등의 반응이 많았다.

기자회견 내용도 실망스러웠다. KT는 이날 “모든 정보를 회수했다” “기존 해킹 사건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에 따를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내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시스템을 갖추겠다는 대책도 밝혔지만, 고객들은 ‘외양간을 확실히 고치겠다’는 변명보다 ‘소를 잃어버린 충격’에 대해 최고 책임자가 충분히 사과할 것을 바라고 있다.

KT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4년 전 한메일 서비스 장애는 결국 해킹이 원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지만, 해킹 때문이라는 의혹만으로도 CEO가 고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SK컴즈, 넥슨 등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가 발생하면 CEO가 직접 나서 고객 앞에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개인정보는 고객이 맡긴 자산으로, 자산을 잃어버렸다면 대표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신종 수법이어서 막을 수 없었고, 자진 신고를 통해 범인을 검거했다는 해명으로 일관하는 것은 고객 정보로 먹고사는 대기업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KT는 최근 런던올림픽 사격 종목에서 KT 직원인 진종오 선수가 2관왕을 차지하자 이석채 회장이 ‘초고가의 한정판 권총을 선물해 줬다’ ‘금메달 부담을 주지 않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적극 홍보했다. 이 회장은 자신을 자랑하는 홍보에만 열중하지 말고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 사안에 책임감을 갖고 직접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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