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 청원”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청원은 19일 밤 기준 참여인원 10만명을 넘어섰다. 공식 청원 등록이 검토 중이지만 나흘 만에 참여인원이 급증해 이번 사태에 법원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여론 분위기가 뚜렷이 확인된다.
앞서 서울시는 도심 개최를 신고한 모든 집회에 금지명령을 발동하고 방역당국·경찰 등과 협조해 집회 개최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일 확진자 수가 조금씩 증가하는 등 지역감염 재확산 조짐이 뚜렷한 상황에서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는 집단감염 온상이 될 수 있고, 종교행사 등 대규모 집회가 감염 확산의 시발점이 됐던 전례를 감안하면 시의 이같은 조치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타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허망하게도 법원은 30여개 단체에 내려진 명령 가운데 2건에 대해 집회를 허락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는 지난 14일 오후 민경욱 전 의원이 주도하는 ‘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가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신고한 3000명 규모 집회와 보수단체 ‘일파만파’의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 100명 규모 집회, 2건에 대해 집회금지 행정명령 효력을 정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참가자 마스크 착용 및 명단 작성·비치,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손 세정 등 감염예방 조치를 적절히 취한다면 감염병 확산 우려가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예상된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집회를 허락했다. 신천지, 이태원 클럽 등 대규모 밀집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전례를 무시하고 감염 확산 우려가 예상되지 않는다는 과감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시는 집회 금지 명령 당시부터 소규모의 집회를 허락해도 집회 참여자들이 이를 어기고 대규모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했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가능성도 무시했다. 법원은 아예 “집회가 신고 내용과 달리 이뤄질 것이라고 미리 단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전광훈도 “법원이 허가해줬다”
법원의 판단이 보수집회 참여자들에게 중요한 행동 동기를 제공했음은 사랑제일교회를 이끄는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확진 판정을 받은 전 목사는 18일 병원 입원 후 기독교계열 매체 크리스천투데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법원이 인정한 집회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요지로 자신의 행동을 변호했다.
|
판사 해임 청원을 낸 청원인은 “100명의 시위를 허가해도, 취소된 다른 시위와 합쳐질 것이라는 상식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기계적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내세운 무능은 수도권 시민의 생명을 위협에 빠트리게 할 것”이라며 법원을 비판했다.
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가 시위참여자, 일반 시민, 그리고 경찰 등 공무원을 위험에 빠지게 한 판단에 해임 혹은 탄핵과 같은 엄중한 문책이 필요하다”며 “판사의 잘못된 판결에 책임을 지는 법적 제도 역시 필요하다. 왜 그들의 잘못은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청원인 지적대로 우리도 법관 탄핵 제도를 갖고 있으나 사실상 기능하지 못하며 탄핵 사례도 전무하다. 헌법이 재판 독립을 위해 법관 지위를 보호하는 데다 탄핵 사유 역시 직무 관련으로만 한정된 탓이다.
직무 외 사유로 탄핵이 가능한 미국이나, 국민이 탄핵청구권을 가지며 실제 탄핵 사례도 다수 존재하는 일본과 크게 비교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석연찮은 판결이 나올 경우 해당 법관에 대한 탄핵 요구가 쇄도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그동안 법관 탄핵을 위한 특별법, 특별재판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학계, 시민단체 등을 통해 주장되기도 했다. 판사 출신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1대 국회에서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 법관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