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우리나라 정경유착(政經癒着)의 골은 그 뿌리가 깊다. 무려 60여년 전인 지난 1952년. 이승만 정권 때도 정경유착의 유혹은 강렬했다. 당시 ‘1차 중석불 사건’이 터졌다. 중석달러는 주력수출기업이었던 대한중석에서 생산되는 중석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를 말한다. 중석달러는 선박과 광산용 자재, 기계류 등을 수입할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런데 기업인들은 고위관료들에게 비료와 양곡을 수입하는 등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로비를 펼쳤다. 정치권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이를 통해 정치자금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업자들은 이를 가지고 농민에게 5배의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후 정경유착의 고리에서 자유로웠던 정권은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이 대표적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이용된 ‘일해재단’도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의 친인척 비리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올해 경제계의 최대 적폐(積弊)를 정경유착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만에 하나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삼성그룹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최순실씨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했다면, 이는 정경유착의 전형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정경유착의 도구로 국민연금까지 동원된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국민적으로 용납이 어려운 사건이다.
웃는 모습으로 총수들과 독대한 뒤 대통령이 버젓이 기금 출연을 요구하고, 총수들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걱정하는 게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전문가들은 매 정권마다 나타나는 정경유착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 만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강제성이 있는 준조세를 거두지 못 하도록 아예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정경유착의 책임은 정치권에만 있는 건 아니다. 기업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 총수일가 특유의 불투명한 경영이 발목 잡혀 정치권의 요구가 부당해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