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만든 '시가 9억' 주택연금 기준‥"현실성 없다"

서울 아파트 주인 2명중 한 명은 가입안돼
집값 뛰는데 가입조건 9억기준 12년째 유지돼
국회 논의 시작‥"고가주택 소유자 지원" 반론
  • 등록 2020-08-27 오전 6:00:00

    수정 2020-09-07 오후 3:36:38

[이데일리 장순원 이승현 기자] 서울 목동에서 30년째 거주 중인 A(75)씨는 얼마 전 주택연금에 가입하려 주택금융공사를 찾았다가 헛걸음만 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이미 9억원을 넘어 주택연금 가입이 불가능해졌다는 답을 들었다. ‘재산이라고는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인데 주택연금 가입도 안되느냐’고 따졌지만 “규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A씨는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노후자금이 없어도 주택연금 받아서 생활하면 되겠지 믿었는데, 이 나이에 평생 살던 집을 팔고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실제로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고령층에게 주택연금은 ‘좁은 문’이 됐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기준 때문이다. 현재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시가 9억원(감정원 시세기준) 이하 주택보유자여야 한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이미 9억원을 넘었다. 서울 지역 웬만한 아파트는 주택연금 가입이 불가능하다.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낡은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입자 주춤한 주택연금‥현실 따라가지 못하는 가입조건

26일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 수는 7만6158명으로 집계됐다. 작년보다 약 5000여명 늘어난 수준으로, 예년과 비슷한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올해 4월부터 주택연금 가입연령이 만 60세에서 만 55세로 낮아졌다. 가입대상이 약 115만 가구가 확대됐다. 그럼에도 실제 늘어난 효과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현재 60세 이상 자가 가구의 주택연금 이용율은 1.5%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주택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가입 자격이 주택연금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인 자가주택 보유자가 자신이 사는 집을 담보로 평생 연금(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보증해주는 제도다. 집만 한 채 있고 별도의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 노후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난 2007년 7월 도입됐다. 주택가격이 하락해도 매달 같은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고 재산세와 연금소득 공제 혜택도 있다. 주택담보대출처럼 매달 이자를 낼 필요도 없다. 대표적인 노후 안전판 제도다.

처음 제도를 만들 때부터 소득세법에 따른 고가주택(9억원 초과)은 가입대상에서 제외했다. 국세 세금을 투입해 보증재원으로 활용하는 만큼 고가주택을 가진 부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준주택으로 분류되는 오피스텔 거주자 역시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없게 설계됐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9억원 기준이 연금가입에 발목을 잡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하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올해 8월 기준 9억2000만원을 넘었다. 중위가격은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중간 가격을 말한다. 서울 아파트 소유자의 절반 정도가 주택연금 가입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지난 2017년만 하더라도 중위가격은 6억원에 불과했다.

3년 만에 아파트 가격이 급격히 뛰었지만, 고가주택 기준은 지난 2008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한차례 상향된 이후 12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주택연금 가입 기준도 똑같이 12년째 이 기준에 머물러 있다. 집값이 높아진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고령층은 주택가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신규 주택연금 가입자 중 집값이 많이 뛴 수도권 가입자 비중은 2016년 67.8%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61.9%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지방 가입자 비중은 32.2%에서 38.1%로 올랐다.

국회서도 논의 시작‥가입조건 완화 가능성 커져

정부와 국회도 이런 상황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주택연금 제도는 고령자들을 위한 중요한 노후 안전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60세 이상 1000만명(2018년 통계청 총인구조사)이 넘는 고령인구뿐 아니라 노인 빈곤율(2017년 기준 43.8%, OECD 통계)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60세 이상 가구는 전체 자산의 81.2%(2019년 기준)를 주택 등 비금융성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보유 주택을 활용한 주택연금이 중요한 노후 안전망 역할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9억원 기준은 너무 높은 문턱이다.

실제 우리나라와 비슷한 주택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이나 홍콩도 가입요건으로 주택가격을 제한하지 않는다. 대신 연금청구액에 상한을 두는 식으로 주택연금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현재 주택가격의 한도를 폐지하거나 관련 조항을 재정비함으로써 소유주택을 담보로 안정적인 노후자금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주택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된 논의가 시작됐다. 주택연금 가입조건을 ‘시가’ 9억원에서 ‘공시가격’ 9억원으로 바꾸거나, 아예 상한선을 없애는 내용을 담은 여러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주택연금 가입 기준을 시가 9억원에서 공시가격 9억원으로 바꾸면 약 12만여 가구가 가입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값비싼 부동산을 보유한 부유층 노후까지 공적 성격의 연금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주택연금 가입조건을 완화하자는 논의를 했지만 이런 반론에 막혀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하지만 주택연금의 가입조건을 너무 까다롭게 설정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국회 한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가격이 급등해 주택연금의 가입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서 “가입조건을 낮추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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