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읽어주는 남자]회계법인 대표 징계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회계업계 "과도한 징계" vs 금융당국 "감사품질 향상 위해 필요"
규개위 철회권고…총선 후 의원입법으로 다시 발의될수도
"회계법인 대표 징계 논의 앞서 분식회계 기업 제재 정밀해져야"
  • 등록 2016-04-09 오전 10:10:04

    수정 2016-04-09 오전 10:10:04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부실한 회계감사를 방치한 회계법인 대표를 금융당국이 제재하는 내용의 법안이 결국 좌절됐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지난달 25일 과도한 규제라며 철회권고를 내렸기 때문이지요. 회계업계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고 금융당국은 못내 아쉬운 표정입니다.

회계업계는 매년 3000여곳 이상을 감사하는 대형 회계법인의 대표이사가 일일이 개별 감사에 대해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아무리 꼼꼼하게 감사해도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묻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겁니다. 또 회계법인의 개별 기업 감사 결과는 총괄대표에게 일일이 보고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파트너급 회계사가 책임을 지고 처리를 하는데 이들은 현행 규정으로도 부실 감사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금융당국은 이런 회계업계 주장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별 기업에서 분식회계가 발생하면 곧바로 회계법인 대표를 징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표이사가 감사품질 관리 업무를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겠다는 겁니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더라도 적절한 시간과 인력, 외부 전문가를 투입해 최대한 성실히 감사를 하려고 노력했다면 실제 징계로 이어지지 않는데도 마치 징계가 남발될 것처럼 이야기해선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또 현재 회계법인 대표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들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회계법인 전체의 감사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회계법인은 주식시장 상장사에 대한 회계감사를 할 수 없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계업계와 금융당국의 논리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이라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긴 어려워 보입니다. 좀 더 논의가 진전되고 공론화가 이뤄지면 어떤 방법이 회계 투명성 향상을 위해 좋은 길인지 명확해지겠지요. 금융당국의 행정입법으로는 규개위에 막혀 입법화되지 못했지만 총선 이후 의원입법으로 다시 논의가 이뤄진다면 국회 차원에서 또 한 번 타당성을 가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계법인 대표 징계’를 논하면서 우리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회계 투명성 향상을 위해 방울을 달아야 할 진짜 고양이가 누구냐는 겁니다. 회계법인도 결국 기업 감사업무를 따내야만 법인을 운영할 수 있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 노출되면서 기업에 비해 을(乙)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사에 필요한 자료를 기업으로부터 얻기조차 힘들다는 일선 회계사들의 하소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재무제표는 감사인이 아니라 회사가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 작정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른 뒤 감사인에게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감사인도 이를 밝혀내긴 쉽지 않습니다. 과거 부실 저축은행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징계가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할 이유입니다.

금융당국은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과징금 한도를 과거 최대 20억원에서 분식회계 건 건별로 부과하는 방식으로 징계 수위를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회사에 대한 징계일 뿐 과거 분식회계 행위를 저지른 경영진에 대해서는 행정적인 징계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당기순이익을 부풀리고 그만큼 성과급도 챙긴 뒤 회사를 떠난 얌체 경영진은 제재하지 않고 분식회계가 발견된 시점에 경영진으로 앉아 있던 사람만 징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 기업에서 분식회계가 일어나면 주주로서도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과징금마저 주주 재산인 회사 돈으로 내도록 한다면 주주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지요. 분식회계가 발생한 시점부터 거슬러 올라가 가장 책임이 무거운 경영진부터 징계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회계법인 대표 징계’에 대한 논의도 진지하게 이뤄져야 하겠지만 진짜 방울을 달아야 할 고양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청룡 여신들
  • 긴밀하게
  • "으아악!"
  • 이즈나, 혼신의 무대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