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는 매년 3000여곳 이상을 감사하는 대형 회계법인의 대표이사가 일일이 개별 감사에 대해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아무리 꼼꼼하게 감사해도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묻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겁니다. 또 회계법인의 개별 기업 감사 결과는 총괄대표에게 일일이 보고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파트너급 회계사가 책임을 지고 처리를 하는데 이들은 현행 규정으로도 부실 감사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금융당국은 이런 회계업계 주장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별 기업에서 분식회계가 발생하면 곧바로 회계법인 대표를 징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표이사가 감사품질 관리 업무를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겠다는 겁니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더라도 적절한 시간과 인력, 외부 전문가를 투입해 최대한 성실히 감사를 하려고 노력했다면 실제 징계로 이어지지 않는데도 마치 징계가 남발될 것처럼 이야기해선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또 현재 회계법인 대표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들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회계법인 전체의 감사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회계법인은 주식시장 상장사에 대한 회계감사를 할 수 없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계법인 대표 징계’를 논하면서 우리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회계 투명성 향상을 위해 방울을 달아야 할 진짜 고양이가 누구냐는 겁니다. 회계법인도 결국 기업 감사업무를 따내야만 법인을 운영할 수 있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 노출되면서 기업에 비해 을(乙)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사에 필요한 자료를 기업으로부터 얻기조차 힘들다는 일선 회계사들의 하소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재무제표는 감사인이 아니라 회사가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 작정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른 뒤 감사인에게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감사인도 이를 밝혀내긴 쉽지 않습니다. 과거 부실 저축은행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징계가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할 이유입니다.
또 기업에서 분식회계가 일어나면 주주로서도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과징금마저 주주 재산인 회사 돈으로 내도록 한다면 주주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지요. 분식회계가 발생한 시점부터 거슬러 올라가 가장 책임이 무거운 경영진부터 징계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회계법인 대표 징계’에 대한 논의도 진지하게 이뤄져야 하겠지만 진짜 방울을 달아야 할 고양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