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평온했던 `웰빙마을` 순식간에..폭우가 할퀸 현장

6명 사망·실종..목격자 "불과 10분 사이 참극"
"비 더 오면 추가 피해 우려..인적·물적 지원 절실"
  • 등록 2011-07-28 오전 8:39:54

    수정 2011-07-28 오전 8:39:54

[이데일리 이창균 기자] "산에서 갑자기 개천 물이 폭풍처럼 밀고 내려오더니 모든 입구를 막았습니다. 잠시 후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마을 저편에서 잇따라 들려왔어요"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에서 만난 주민 공경화(65)씨는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저렇게 큰 나무가 쓰러졌으니···" 옆에 있던 다른 주민은 침울해 하며 말끝을 흐렸다. 또 한 주민은 "40년을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곳곳을 할퀴고 간 전원마을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부서진 주택 외벽, 통째로 뽑혀 쓰러진 나무, 반지하를 잠식한 토사 등이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오후에 찾아본 현장에서는 주민과 군인들이 비를 맞아가며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자장면을 배달시켜 황급히 먹으며 삽으로 집안의 토사를 빼내는 주민도 보였다. 산사태가 난 오전 7시 40분 무렵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거나 먹지를 못한 그들이었다. 수도 공급이 차단돼, 집 주변 배수로에 나와 흐르는 물에 수건을 빨래하는 주민도 있었다. 평온했던 `웰빙마을`은 온데간데 없었다.(관련기사☞ 산사태 덮친 남태령 전원마을은 어떤 곳?) 마을 내 전원말11길에 들어서자, 이웃집 임모(35) 씨가 숨진 순간을 목격했다는 한 주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임 씨가 집 바깥에 세워둔 차의 문을 여는 순간 뒤로부터 쓰러진 나무에 맞아 외벽까지 처박혔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과 인근 주민들이 급히 달려갔으나 전기 공급이 중단된 상태에다 중장비의 도움 없이 실톱만으로 간신히 나무 등 장애물을 제거해 나갔다"며 "3시간 넘게 구조 작업이 지속된 끝에 장애물을 모두 제거했을 땐 임 씨가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한국전력(015760)은 침수로 인한 감전 위험을 감안, 전력 공급을 중단했다가 오후 들어 일부 재개했다.

전원말안7길에 사는 정선우(34) 씨는 "불과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며 "집안엔 30cm 넘게 토사가 쌓였고 집앞에 세워둔 차는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구청 재난치수과에 지원 인력 충원을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는데 모든 인력이 복구 작업중이라 시간이 소요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면서 "내일(28일) 250mm의 비가 더 온다는데, 역류로 인한 더 큰 피해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 지원 인력 추가 투입과 빠른 조치가 절실하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주민은 "물, 라면, 옷 등 생필품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초조해했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서울시는 강남수도사업본부 지원차량을 투입해 1차로 물(아리수) 공급에 나섰다. 주민들은 일렬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더 큰 차가 와야 모든 가구가 물을 받아갈 수 있다", "TV에서나 보던 일을 겪게 돼 당황스럽다" 등 반응을 보였다. 김상순(60) 씨는 "물통을 잃어 심지어 집에 있던 휘발유통을 들고 나와 씻어내고 급한 대로 식수를 받아가는 가구도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 있던 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우면산 일대가 산사태로 모두 잠겨 이재민이 속출한 가운데 복구 작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인력도 장비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피해 지역이 워낙 광범위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재난이 최근 우면산 일대에서 진행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인재(人災)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우면산 생태공원 등산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제방 역할을 하던 주요 지대 나무들을 대거 제거한 것이 큰 화를 불렀다는 주장이다.

거대한 재난이 할퀴고 간 아픈 자리. 늦은 밤이 지나도록 주민과 군인들은 토사를 제거하고 실종자 수색을 계속하며, 길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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