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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등 외신은 데이프가 2021년부터 이번 전쟁 준비를 주도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까지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군사적 성과보단 경제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 역시 데이프가 계획한 속임수였다. 하마스 대변인인 가지 하마드는 “이제 모두가 최근 공격을 주도한 무함마드 데이프를 존경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난민촌서 태어나 하마스 창립서부터 활동
“그는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마스 내 데이프의 측근은 데이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말대로 데이프는 베일 속에 감춰져 있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언론과 대중에 공개된 사진도 세 장에 불과하다. 데이프의 본명은 무함마드 알 마스리로 알려졌지만 이마저 불분명하다. 지금의 데이프란 이름은 아랍어로 ‘손님’이란 뜻으로 이스라엘군 추격을 피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하루 이상 묵지 않는다는 데서 따왔다.
데이프는 1965년 가자지구 칸 유니스 캠프에서 태어났다. 칸 유니스 캠프는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세워진 난민촌으로 1956년 이스라엘군에 의한 학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스라엘 관계자는 데이프의 아버지나 삼촌이 1950년대 이스라엘을 겨냥한 군사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가자 이슬람대학에서 물리학과 화학·생물학을 공부한 데이프는 무슬림형제단 인사들과 교류하며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이스라엘 반대 민중봉기)를 계기로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를 모체로 하마스가 설립되자 데이프도 여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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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제거 시도에도 살아난 ‘고양이’
이스라엘에 데이프는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은 지금까지 7차례 이상 데이프를 제거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두 무위로 끝났다. 이 때문에 데이프는 ‘불사조’, ‘9개 목숨을 가진 고양이’란 별명도 얻었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사살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프는 지하 터널에 은신하며 전쟁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데이프는 2014년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아내와 아들을 앞세운 데 이어 이번 전쟁에서도 형을 잃었다. 그 자신도 2002년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 일부를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이스라엘군 전직 장성은 “사람들은 데이프가 다신 지도자나, 전략가로 활동하지 못할 줄 알았다”며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회복했다”고 BBC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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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청년서 영향력 1위 차지하기도
사치 행각으로 비판을 받는 입길에 오르내리는 다른 하마스 고위간부와 달리 데이프는 소박한 생활로 인기가 좋다. 투쟁 활동 외엔 권력 욕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그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2021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데이프는 팔레스타인 청년(15~35세)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65.9%)로도 꼽혔다. 전문가들은 2년간 준비해 온 이번 전쟁에 데이프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었다면 보안 유지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데이프는 어떻게 될까. 베로나안보연구인터내셔널팀의 옴리 브리너는 “팔레스타인 저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이번 작전으로 그의 유산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프랑스24 방송에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 군사정보부 출신인 요시 쿠페르바세르는 “장기적으로 보면 그의 계산은 틀렸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보여줬다”고 WSJ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