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강모(34)씨는 올 여름 폭염 탓에 전기요금 걱정이 태산이다. “부모님 용돈 드리고 월세 내면 안 그래도 생활이 빠듯한데 울화가 치민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7월 다가구주택 지하 월셋방으로 이사온 뒤 1년 간 전기요금은 월 4만원에서 12만 5590원으로 세 배 넘게 뛰었다. 가전제품이라곤 이전 집에서도 쓰던 냉장고와 세탁기, 컴퓨터 정도인데 다가구 주택으로 이사 온 이후 전기요금만 천정부지로 올랐다.
강씨가 집주인에게 항의했지만 “주택에 설치된 계량기가 1대뿐이라 다른 층의 사용량까지 합쳐지다보니 누진제 요금이 부과돼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강씨는 개별 계량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집주인은 설치 비용이 부담스럽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례적인 장기 폭염 속에 다가구 주택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전기요금 배분 문제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다가구 주택은 1대의 계량기로 입주한 가구가 사용한 총 전기사용량을 측정하다 보니 누진제 폭탄을 맞기 일쑤다. 게다가 올 여름은 길어진 폭염 탓에 전기사용이 늘면서 폭증한 요금 문제로 입주자와 집주인이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100kwh 썼는데 3만6225원?”…다가구 주택 ‘누진제 직격탄’
다가구 주택은 전체 가구의 전기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을 매기다보니 조금만 전기 사용량이 늘어도 누진제 폭탄을 피하기 어렵다.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요금의 특성상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요금 단가는 비싸진다. 각 가구의 전기사용량은 100kwh에 못 미친다해도 전체 사용량이 500kwh를 초과할 경우 가정용 누진제 적용으로 단위당 가장 비싼 전기요금이 매겨진다.
100kwh만 썼을 때는 누진제 1단계가 적용돼 전기요금이 7350원에 불과하다. 각각 가구당으로 전기요금이 부과되면 여섯가구에 부과되는 전기요금은 총 4만4100원이다.
하지만 계량기를 한개만 사용하는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섯가구가 모두 100kwh씩 총 600kwh를 쓴 셈이 돼 가장 비싼 6단계 누진제가 적용된다. 이때는 총 전기요금이 21만7350원으로 5배 가까이 폭증한다. 여섯가구가 이를 6분의 1씩 나눠도 3만6225원이다.
똑같은 전기를 써도 다가구 주택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가구당 2만8875원의 요금을 추가로 더 내야 한다는 얘기다.
한전 ‘1주택 수 가구 제도’로 부담 경감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전력(한전) 측은 1주택에 2가구 이상 사는 경우 거주자의 신청을 받아 개별 전기 요금을 계산해 주는 ‘1주택 수 가구’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1주택 수 가구’제도는 전기사용량을 세대 수로 나눠 평균 단가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앞서 예시로 든 6가구가 입주한 다가구 주택이라면 전체 사용량이 600kwh라고 해도 가구당 100kwh씩 적용해 1단계 전기요금을 부과한다. 다가구 주택이나 주상복합 건물, 고압전기를 분할해 쓰는 아파트 거주자 등이 적용 대상이다.
|
누진제 피해도 요금 분배두고 갈등
‘1주택 수 가구’제도를 이용해 누진제 폭탄을 피했다고 해도 전기요금 배분 문제로 갈등을 빚기 십상이다. 가구당 개별 계량기를 설치할 경우 개당 50만~6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돼 집주인들은 개별 개량기 설치 대신 전기요금을 가구당 또는 식구당 n분의 1로 나눠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초 원룸으로 이사온 이모(29·여)씨는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집에서는 겨우 잠만 자는 수준이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아이를 키우는 옆집과 같은 금액을 낸다. 집주인이 주거인 수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가구수로 전기요금을 나눠 매기기 때문이다. 이씨는 “누진제 걱정으로 열대야에도 에어컨을 쉽게 틀지 못했는데 절약해봤자 나만 손해보는 이상한 구조”라고 분개했다.
한전 관계자는 “다가구 주택의 경우 기본적으로 한전 계량기 1대만 설치하고 있어 갈등의 소지가 있다”며 “임대인이 세대별 계량기를 설치하는데 비용 부담을 느낀다면 ‘1주택 수 가구 제도’를 신청해 누진제 부담을 줄이고 개별 가구에서 보조 계량기를 설치해 가구별 사용량을 확인하면 전기요금 배분문제로 인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