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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의 당선과 친박의 압승으로 마무리된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를 보면서 ‘나비효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두가 근본없는 놈’이라고 비웃었지만 이정현 대표의 당선으로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는 사실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확정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른바 이정현의 나비효과입니다. 그런데 더 주목할 점은 반기문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정현 대표 체제 등장…반기문 與 대선후보 사실상 예약
반기문이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사실상 굳어지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지난 5월 방한 이후 이른바 대망론에 불을 붙인 이후 반기문은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순간의 인기가 아닙니다. 방한 이후 별다른 정치적 언급 없이도 지지율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에서 본인에 우호적인 친박계가 당권을 완전하게 장악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는 물론 친박계 내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를 사실상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반기문에 맞설 대항마가 사실상 여권 내부에 없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의 8.9 전대를 거치며 비박계 차기주자들은 대거 몰락했습니다. 비박 단일후보 탄생의 막후 역할을 했는 김무성 전 대표는 박 대통령까지 정면 비판하며 전대에 올인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전대 하루 전날 비박 단일후보 주호영 의원 지지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대 국면에서 침묵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물론 정치는 생물입니다. 이변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대선후보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선룰 관리입니다.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한 만큼 비박계 주자들에게 유리한 경선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더구나 반기문과 나머지 차기주자들의 지지율은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반기문의 권력의지는 확고합니다. 지난 5월 방한 당시 국내에서 보여준 언행에서 잘 나타납니다. 관훈클럽 초청포럼에서 “(대선후보 거론에) 인생을 열심히 살았고 헛되게 살지는 않았다는 평가에 자부심을 느끼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사무총장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할지 생각 안했다. 내년 1월1일이면 한국사람이 된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방한 기간 동안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극비 회동한 것은 물론 여권의 텃밭인 TK지역에서 주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반기문이 현실정치에 뛰어들면 새누리당행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입니다. 대선후보로서 인기가 아무리 높아도 선거는 현실입니다. 대선은 단기필마로 치를 수 없는 게임입니다. 새누리당이라는 막강한 조직과 인력, 재정적 지원은 물론 홍보, 전략 기능의 뒷받침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올해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마무리되면 내년초까지 해외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가 국내로 귀국,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사실상의 대선행보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입니다.
◇文·安 단일화 불가능?…반기문, 무소속 출마 후 단일화 승부수
반기문이 귀국한다 해도 새누리당 입당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진흙탕 공방이 벌어지는 여야의 대선경쟁에 곧바로 뛰어드는 것보다는 무소속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야당의 날카로운 검증공세를 피하고 본인의 몸값을 가장 높이는 거의 유일한 길입니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은 야권에 비해 역동성이 떨어집니다. 반기문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뒤 여권후보와의 단일화는 메가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어마어마할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내년 대선에서 다자구도는 필연입니다. 2012년 대선에서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를 불분명한 단일화를 경험한 문재인과 안철수는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단일화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보다는 양측 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반목이 심해진다면 87년 대선국면의 양김분열과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반기문은 굳이 무소속 후보를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여권후보 단일화를 선택하든, 야권분열 구도에서 새누리당의 후보로 나서든 그것은 전적으로 반기문의 선택입니다. ‘영남 기반 정당에서 내세운 충청권 대선후보를 호남 당 대표가 만들어낸다’ 한국 정치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환상적인 정치공학적 조합입니다. 내년 대선국면에서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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