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용 계보' 안병주 "여성 恨과 도전, 몸짓에 불러내"

창작무용극 '몽혼'으로 무대 직접 서
임에 대한 그리움 담아낸 이옥봉 시
퓨전춤판으로 재해석…23일 아르코예술극장
'신무용 대가' 어머니 김백봉 따라 '무용' 외길
"명맥잇는 게 우선이지만 내 스타일 작업도"
  • 등록 2015-12-17 오전 6:17:00

    수정 2015-12-17 오전 6:17:00

신무용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안병주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는 “1시간 이상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지금까지 대를 잇는 춤을 춰왔다면 무용극 ‘몽혼’에선 나만의 색깔을 입힌 안병주의 춤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국 신무용 전승에 힘쓰고 있는 김백봉(88·경희대 명예교수) 선생의 가문. 최승희의 수제자로 알려진 김 선생은 ‘장고춤’ ‘부채춤’ ‘화관무’ 등으로 한국 신무용의 형태와 기틀을 다져왔다. 한국무용계에 굵직한 획을 그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 ‘보관문화훈장’과 2005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올 초 ‘제2회 이데일리 문화대상’에서는 공로상을 수상했다.

바로 그 김 선생의 딸이자 제자인 안병주(54)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는 어머니를 따라 ‘무용’을 하게 되리란 걸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밥을 먹을 때나 대화를 할 때조차 무용이 늘 중심에 있었고, 본능적으로 평생 무용의 길을 따라왔다. 하지만 단순히 어머니의 ‘덕’으로만 살아온 건 아니다. 외적인 문제로 인해 잠시 춤을 못 췄던 적도 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신무용의 계보를 이어왔다.

안 교수는 “미친 듯이 한우물을 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운명처럼 받아들여 결코 쓰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신무용’을 계속 보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안병주 경희대 교수(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옥봉의 시 ‘몽혼’ 퓨전 춤판으로 재해석

안 교수는 오는 23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무용극 ‘몽혼’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 허난설헌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이옥봉의 시와 그녀의 죽음에 얽힌 야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창작무용이다. ‘몽혼’은 국어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옥봉의 대표시로 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잘 표현했다. 공연에선 ‘몽혼’에 담긴 시혼, 삶과 죽음을 한편의 퓨전 춤판으로 재해석해 여성의 궁극적 삶의 지향점, 또 가치를 가늠해보고자 했다. ‘시작’ ‘먹물바다’ ‘사창에 비친 달’ ‘모래무덤’ ‘검은 부채’ ‘파시’ 등 6장으로 구성했다. 총 24명의 무용수가 옥봉, 시인, 시혼 등을 연기하는데 안 교수는 옥봉 역으로 직접 무대에 선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내 인생이 이옥봉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옥봉은 시대와 환경의 속박으로 마음껏 재주를 펼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를 썼다. 좌절의 순간을 겪었어도 결국은 춤을 추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 작품을 만들게 됐다.” 힘들고 억울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일궈내는 모습을 강렬한 춤에 담아냈다. “무언가를 성취해가는 도전적인 의지는 단지 개인의 이야기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여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여성성에 대한 강한 욕구를 담아내려 했다.”

무용가 안병주 경희대 교수(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신무용 종가 지키며 현대와의 만남 시도

‘안병주 춤·이음 무용단’의 대표이자 평남 무형문화재 제3호 김백봉 부채춤 보유자인 안 교수는 그간 억압받는 여성의 한을 풍자적으로 재해석해 왔다. 무용단을 통해 20여년 동안 신무용의 종가를 지키며 현대와의 만남을 부단히 시도했다. 대표작이자 연출작으로는 ‘맥’ ‘여량염곡’ ‘바다’ ‘건곤일척무’ ‘햇빛새장’ 등이 있다. 2006년에는 프라하에서 열린 ‘뉴프라하댄스페스티벌’(New Prague Dance festival)에 공식 초청돼 영예의 대상인 남·여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계보를 이어가는 건 숙명이다. 이미 정해진 일이기도 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 맥을 잇는 게 1순위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스타일의 춤을 만드는 작업 역시 지속하고 싶다.”

안 교수는 한국무용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재능있는 젊은 무용수가 많기도 하고, 전통의 틀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어서다. “전통무용은 결국 한 나라의 색깔을 보여주는 거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왕권을 지키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행했던 것이 춤과 음악이었다. 시대는 바뀌어도 전통을 지켜내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훌륭한 소프트웨어가 있음에도 다양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지원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이다. “직접 표를 사서 무용공연을 보는 문화가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형편없는 공연이든 좋은 공연이든 여러 작품을 접해야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한국무용의 비전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배우는 학생들이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무용공연을 볼 수 있는 준비된 환경이 무용계를 살리는 길이다.”

창작무용극 ‘몽혼’의 연습장면(사진=안병주 춤·이음 무용단).
창작무용극 ‘몽혼’의 연습장면(사진=안병주 춤·이음 무용단).
창작무용극 ‘몽혼’의 연습장면(사진=안병주 춤·이음 무용단).
창작무용극 ‘몽혼’의 연습장면(사진=안병주 춤·이음 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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