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이른바 특수직역연금으로 불리는 이 연금들은 언제쯤 고갈될까. 이 연금들은 고갈 문제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있을까. 혹시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다면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예상보다 훨씬 끔찍하고 불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미 고갈된 군인·공무원 연금..그러나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공무원연금은 지난 93년부터 적자를 기록하다가 2001년에 이미 고갈됐다. 군인연금은 이보다 훨씬 전인 1977년에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물론 지금도 군인들과 공무원들은 매월 자기 봉급의 일정 비율을 내지만 그것으로는 본인들의 미래를 위한 적립은 커녕 이미 퇴직한 선배들의 연금을 주기에도 부족하다. 그래서 매년 세금으로 그 부족분을 메워준다.
국민연금도 이대로 가다간 기금이 고갈되고 후손들이 세금으로 연금을 주는 상황이 된다고 걱정하는데,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올해 정부가 공무원연금 부족분을 메워주기 위해 투입하기로 한 예산은 1조8953억원, 군인연금에는 1조3891억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공무원 연금에는 12조원. 군인연금에는 7조2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돈이면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으로 매월 10만원씩 더 줄 수 있는 돈이다.
사립학교 교원들에게 주는 사학연금은 아직 고갈되지는 않았지만 2033년쯤에는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모두 국민연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은 셈이다.
◇ 왜 고갈됐나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이 빨리 고갈된 이유는 단 하나다. 본인이 낸 돈 보다 받아가는 연금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불입 기간의 투자수익률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같은 돈을 민간 보험사에 부었을 때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40세부터 60세까지 매월 20만원씩 20년간 연금을 붓고 60세부터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국민연금은 매월 약 80만원씩 준다. 그러나 같은 돈을 민간 보험회사에 맡겨서 굴리면 사망할 때까지 매월 32만원을 주는 데 그친다.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이 민간 보험사 자금운용팀보다 돈을 더 잘 굴린다는 보장이 없다면 애초부터 고갈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가입자에게 퍼주기로는 국민연금보다 공무원연금이, 공무원연금보다 군인연금이나 더 후하다. 후할수록 빨리 고갈된 건 당연한 결과다.
군인들은 소령 이후로 계급정년이 있어서 승진하지 못하면 40대 50대에도 강제로 은퇴해야 하기 때문에 연금을 받는 기간이 일반 공무원보다 훨씬 더 길어진다. 군인연금이 더 빨리 고갈된 이유다.
◇ 왜 개선하지 않나
공무원연금에 대한 개혁 논의는 2008년부터 진행됐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등의 반발로 공무원연금의 유리한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방식의 미봉책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공무원들도 회사원과 같은 방식으로 국민연금을 내도록 하는 게 일반 국민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언급하고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퇴직금은 별도의 연금으로 보충하자고 제안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이보다 한 해 앞서 국민연금은 고갈 시기를 뒤로 미루기 위해 급여를 33% 인하하는 개혁안을 받아들였으나 공무원 연금은 당시 재직기간이 10년 이상인 공무원은 연금을 한푼도 깎지 않았고 10년 이하 공무원들도 연금액을 점진적으로 1~8% 감축하는 데 그쳤다. 다만 개혁안이 시행되는 2009년부터 임용되는 공무원들만 연금지급 시기를 65세로 미뤘다. 결과적으로 2008년에 임용된 공무원은 60세부터 연금을 받게 되고 한 해 뒤에 임용된 공무원은 65세부터 연금을 받게 되는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되게 됐다. 제도개혁이 시행된 시점 이후로 보험료를 납부하는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연금혜택을 축소한 국민연금과 비교할 때 과도한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KDI 관계자는 “공무원 연금을 개혁하는 위원회 회의에 공무원 노조 등이 대표로 다수 참석하는 구조여서 제대로 된 개혁안이 나오기 어려웠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회고했다.
한편으로는 민간 기업에 비해 공무원들의 월급여나 퇴직금이 적고 직업군인들의 경우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격오지 근무 등을 감안할 때 퇴직 후의 연금혜택을 민간에 비해 후하게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불합리한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여전하다. 그러나 광주과학기술원 김상호 교수는 “나이와 학력이 같은 두 사람이 공무원에 임용됐을 경우와 직원수 100인 이상의 중견 기업에 취업했을 경우 생애 소득을 비교해보면 2008년 입사(임용)자의 경우 공무원의 생애소득이 민간 기업 입사자보다 7.6%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공무원 보수가 최근 들어 현실화되면서 박봉에 시달렸던 공무원들은 대부분 과거에 임용된 사람들이어서 최근에 임용된 공무원과 장기근속 공무원에 대해 개혁의 강도를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대안은 없나
우리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주로 교수나 공무원들인데 공무원 연금과 사학연금이 바로 이들의 노후 밥그릇이라는 점도 이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자기 노후 연금 깎자는 주장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자기 연금이 깎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소속된 집단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다는 게 문제”라며 “한국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내부적으로는 대단히 폐쇄적인 조직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의 류건식 선임연구원은 “국민연금은 복지부, 군인연금은 국방부, 공무원연금은 행안부가 담당하는데 구멍난 재정지원은 기획재정부가 한다”면서 “이렇게 여러 부처로 찢어져있기 때문에 연금개혁이 안된다.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산하에 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공무원연금 어떻게 바꿨나>
공무원 연금의 구멍을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연금혜택이 일반 국민들보다 더 크다는 모순점은 일본에서도 최근 수년간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문제다. 결국 일본은 지난해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해 이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했다.
개혁의 요지는 단 하나, ‘공무원은 특별한 국민이 아니다’ 였다. 공무원 연금과 후생연금(일본의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것. 공무원과 일반 국민이 같은 체계 안에서 똑같은 비율로 연금을 내고 똑같은 비율로 연금을 타가는 구조를 만든 게 일본의 공무원 연금 개혁안의 요지다.
후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국민 전체의 모럴 해저드는 생길지언정 당대에 특정 계층의 모럴해저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2015년 10월까지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도 후생연금으로 갈아타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제도를 없애고 모두 국민연금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같은 해에 입사해 같은 월급을 받은 공무원과 회사원은 퇴직 후 매월 받는 연금도 같아진다는 얘기다.
보험연구원 이상우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연금개혁안은 비슷한 상황인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기본적인 연금체계는 국민연금과 합치고 필요하다면 미국 연방공무원의 TSP제도 등을 별도로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