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들으면 외계어처럼 들리는 ‘네 글자 알파벳’에 2030세대가 푹 빠졌다. 이들은 이 네 글자로 자신의 성향을 되돌아보고, 어울리는 직업이나 연애 성향까지 알아본다. 요즘 청년들이 이토록 관심을 두는 건 성격 유형을 알아보는 검사인 MBTI다. MBTI 검사는 그동안 학교, 기업, 군대 등에서 심리 유형이나 적성을 파악하는 도구로 활용됐지만, 최근 청년층에선 이를 하나의 놀이처럼 대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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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는 최근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인기몰이 중이다. 젊은 층들이 즐겨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자신을 알파벳 네 글자로 설명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인기 TV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진들도 MBTI 검사를 한다. 게다가 MBTI와 관련된 문구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단골손님처럼 오르내린다.
1900년부터 연구가 시작된 MBTI는 검사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각 질문에 답을 하면 이를 바탕으로 외향-내향(E-I), 감각-직관(S-N), 사고-감정(T-F), 판단-인식(J-P) 지표 등 4가지 기준에 따라 나눈다. 이렇게 나눈 지표를 토대로 조합하면 총 16가지 심리 유형이 나오는데, MBTI 검사는 이 중 하나를 개인의 성격 유형으로 부여한다.
전문가들은 MBTI가 인기를 끄는 요인에 청년들의 현실이 반영됐다고 풀이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래가 불안하고 불확실한 청년층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자신을 타인과 비교, 계량화하려는 마음이 깔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경제·사회적으로 어렵다 보니 자신의 성격·진로를 찾아보려는 심리”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 MBTI 검사를 이용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언택트(Untact) 환경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면서 “SNS 세대가 이런 환경에서 온라인에 밀접해지다가 유용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로 MBTI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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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선 MBTI 유형을 통해 대인 관계·연애 등을 진단할 수 있다는 콘텐츠들이 유행을 틈타 마구잡이로 쏟아지다 보니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작 몇 문제로 성향을 파악해준다는 검사까지 등장한 탓이다. 이런 검사에선 성향 특징을 ‘아싸’(주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이기적이다’ 등 부정적으로 비칠만한 문구로 나타내기도 한다.
김 연구부장은 또 “공식 문항과 가장 유사한 문항으로 검사를 받는다고 해도 유형만 알 수 있을 뿐, 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가 해석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라며 “MBTI 검사가 무엇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인지도 모른 채 검사 결과로 나오는 유형만을 가지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건 부정적 효과를 키울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MBTI 검사가 젊은 층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김 연구부장은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MBTI 유형에 관심을 두는 현상을 나쁘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며 “검사 이후 전문가 해석을 통해 자신이 선천적으로 무엇을 선호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도 “이런 검사에선 성격에 대한 보편적인 묘사들이 자신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바넘 효과’도 발생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성향에 맞춰서 움직이게 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나오기도 한다”면서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스스로 방향성을 찾아서 가는 데 MBTI 검사가 은연중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