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읽어주는 남자]불법 판치는 아파트 회계, 문제는 입대의

세입자들이 기여한 수입으로 집주인이 내야 할 돈까지 충당
"관리비 폭탄" 입대의 등쌀에 관리소장은 규정 못지켜…결국 관리소장이 과태료 내
  • 등록 2015-10-10 오후 12:41:14

    수정 2015-10-10 오후 12:41:14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우리가 사는 아파트 이야기를 또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지난 <‘등잔 밑’ 아파트 회계 똑바로 알기> 기사의 연장선이지요.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는 곳이지만, 정작 아파트 관리비로 낸 내 돈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실상을 알고 나면 아파트 각지에서 주민 폭동이 일어나진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만, 속 시원히 이야기할 건 해야겠습니다.

아파트에 전세나 월세로 사는 분들은 혹시 아셨습니까? 집주인이 내야 할 돈까지 세입자들이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전세보증금을 올리고 반전세로 전환되는 것도 서러운데 집주인이 낼 돈까지 내주고 있었다니.

개인 소유의 양옥에서 세 들어 산다면 집주인과 세입자가 부담해야 할 몫이 명확합니다만 수 백세대가 사는 아파트인데다 전문성이 필요한 관리비 회계 처리를 회계를 잘 모르는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간섭을 하다 보니 온통 뒤죽박죽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떤 아파트라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하니 독자 여러분이 사는 아파트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아파트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여러 부대 시설 이용료나 알뜰 장터 행사를 해서 들어오는 수입이 있습니다. 이런 수입을 잡수입이라고 하는데, 잡수입 관리규약을 보면, 집주인이 기여한 수입은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하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함께 기여한 수입은 관리비에서 빼주거나 예비비로 쓰도록 해야 합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엘리베이터나 CCTV, 울타리와 같은 중요한 시설을 보수하기 위해 쌓아두는 돈으로 집주인들에게만 걷으며 예비비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부담해서 아파트 운영에 쓰는 돈입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 임대 수입이나 통신중계기 임대 수입과 같은 것들은 집주인과 세입자 중 누가 번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린이집 건물이나 통신시설을 이용할 장소를 제공한 것이니까 집주인이 기여한 것이고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은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쌓게 되지요. 하지만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린 재활용품을 고물상에 팔아서 들어온 수입이나 알뜰 장터 수입, 게시판 광고 수입과 같은 것들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기여한 것으로 여기서 벌어들인 돈은 관리비를 깎아 주는데 쓰거나 예비비로 적립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는 이런 규정을 무시합니다. 세입자들이 기여해서 번 수입까지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쌓아버립니다. 즉, 세입자들이 버린 재활용품을 팔아 번 돈으로 집주인이 내야 할 엘리베이터나 울타리 수리 비용을 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회계 처리가 엉망진창이 된 것은 주택관리 전문가가 아닌 입대의가 아파트 회계 처리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서 벌어집니다. 집주인들이 내야 할 장기수선충당금은 주택법에 따라 장기수선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적립을 해야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법대로 적립하게 되면 아파트 관리비가 올라갈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합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계획에 나온 대로 들어오질 않으니 정작 이 돈이 필요한 중요 시설 수리비에 쓸 수 있는 돈이 없고 결국 세입자들이 낸 돈에 손을 댈 수 밖에 없게 되지요. 아파트 관리소장 인사권은 입대의가 갖고 있기 때문에 생계가 걸려 있는 관리소장은 부당한 줄 알면서도 입대의에 항의를 할 수도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도 않습니다. 방희명 선율세무회계사무소 대표는 “지자체는 관리규약대로 장기수선충당금을 걷어서 집행하지 않았다며 아파트 관리소장에게만 과태료를 부과한다”며 “관리사무소는 입대의에 법규정대로 하자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입대의가 원하는 대로 하면 지자체에 과태료를 내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관리사무소가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두둔하는 건 아닙니다. 일부 관리비를 횡령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관리소장들은 회계감사를 하면 관리비가 올라간다는 이유를 들어 입주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 회계감사를 피해 갑니다. 실제로 오르는 관리비는 몇백원에 불과한데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회계감사를 받지 않도록 종용하는 것입니다. 올해 10월부터 300세대 이상인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지만, 입주민 3분의 2의 서면 동의가 있다면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악용하는 것이죠.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회계처리는 관리소장에게 맡기고 외부 공인회계사를 선임해 철저히 회계감사를 받게 하는 것. 입대의는 관리비 몇 푼 아끼자고 눈을 부릅뜰 것이 아니라 주택법과 규약에 따라 관리비가 공정하게 집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기본적인 첫 단추부터 다시 채워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 관련기사 ◀
☞ [회계 읽어주는 남자]`현금 부자` 삼성전자가 단기대출 쓰는 이유
☞ [회계 읽어주는 남자]‘군 소음 배상금’으로 산 간식, 문제될까
☞ [회계 읽어주는 남자]KT, 이익 늘어도 ‘올레~’ 못해요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골대 밖으로 슛 날린 대우건설 사건
☞ [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기업 곳간엔 진짜로 현금이 넘칠까?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MAMA에 뜬 여신들
  • 지드래곤 스카프 ‘파워’
  • K-마를린 먼로..금발 찰떡
  • 인간 구찌 ‘하니’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