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남 독자 여러분이라면, 드라마를 보며 응당 분식회계를 떠올리셔야 합니다. 박과장이 만든 유령회사는 애초에 없는 곳이었으니 본사 원인터내셔널이 그 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외상값, 즉 매출채권은 모두 손실처리했어야 옳았을 테지요. 박과장의 비리를 적발한 장그래의 용기로 원인터는 그 동안의 회계분식을 바로 잡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박과장의 비리를 숨겨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최악의 경우 원인터를 감사하러 온 회계사는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인 ‘의견거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원인터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는, 이른바 ‘상장폐지’의 근거가 됩니다. 금융감독원의 감리까지 받게 되면 최전무는 물론 원인터 사장까지 줄줄이 검찰 고발 감이지요. 장백기, 안영이, 한석률 등 장그래의 동기들까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던 일을 내부고발로 막아낸 것이니 오상식 과장이 차장으로 승진할만도 하지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도 있었습니다. 코스피에 상장한 D사(투자자 손실을 우려해 익명으로 처리한 점 양해 바랍니다)의 전 경영지원본부장은 박과장처럼 유령회사를 만듭니다. 그리고 하청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납품대금 중 수수료 명목으로 1억 5000만원 규모의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쓸어 담았습니다.
가짜 세금계산서를 이용한 분식회계 수법은 이렇습니다.
기업 갑이 기업 을에게 100만원짜리 상품을 판다고 가정하면 갑은 부가가치세(VAT) 10%를 포함해 110만원을 을에게 받을 돈, 즉 매출채권으로 잡습니다. 이중 실제 상품가격 100만원은 매출액이, 부가세 10만원은 나중에 외상값이 들어오면 세무서에 줘야 할 돈이란 의미로 부가세 예수부채가 됩니다. 갑이 을에게 상품 판매대금을 받으면 부가세까지 잘 받았다는 것을 확인해주기 위해 일종의 영수증을 끊어주는 데 이것이 세금계산서입니다. 세금계산서에는 매출액이나 매출채권 금액이 적혀 있으니 세금계산서만 보면 갑과 을 사이의 매출거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A계열사와 B계열사는 실제 매출거래가 없었음에도 서로 짜고 1232억원 규모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끊어준 것이죠. 서로의 회계장부에는 이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있지도 않은 1200억원 규모의 매출액을 만들어 냈던 것이고요. 은행은 이 회계장부를 철석같이 믿고 100억원에 달하는 예금자 돈을 대출해 줬습니다.
이렇게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누구 하나 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참 사이가 좋은(?) 회장과 대표이사 관계라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아니나 다를까 이들 둘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였습니다.
‘분식회계 부자(父子)’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부터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박과장 같은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철창신세를 지고 있으니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믿어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