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주식 얘기 안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증시 폭락은 투자자에게 있어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를 안겨줬고, 이를 곁에서 지켜본 이들이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말이 생기는 법. 일 년 동안 증시의 희노애락을 함께 한 투자자들이 만든 신조어들은 곧 많은 이들의 입을 떠돌며 올해의 유행어가 됐다. 올해 주식시장에서 언급된 유행어를 통해 한 해를 돌아본다.
개미는 뚠뚠…동학개미·서학개미
코로나19로 인해 코스피 지수가 1400선대까지 폭락했던 지난 3월. 지수를 끌어내린 주범은 외국인이었다. 3월 한 달 만에 무려 12조 5500억원을 팔아치운 것이다. 지난 3월 9일에는 코스피 시장에서 하루 만에 1조 3000억원을 내던지며 일일 기준 역대 최대규모의 매도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외국인의 무서운 매도세에 맞선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개인들이다. 개인은 3월 한 달 동안 11조 1869억원 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이 팔아치운 주식을 대부분 받아낸 것이다. 개인들의 모습이 마치 외세에 맞서싸우는 것 같다고 해서 이 때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퍼지기 시작한다. 이후 언론 등이 개인투자자를 ‘동학개미’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어엿한 유행어가 됐다.
3월 이후 무섭게 주가가 오르며 지수 뿐 아니라 상당수의 종목이 사상 최고치를 계속해서 경신해 나갔다. 특히 나스닥 지수는 지난 6월 처음으로 1만선에 안착하며 ‘만스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테슬라 역시 같은 달 매일같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더니 주가가 1000달러를 넘기며 ‘천슬라’가 됐다.
한국 종목들 역시 하반기가 되자 이름에 하나씩 숫자를 달고 나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005930)는 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감으로 11월 한 달 동안에만 주가가 17.84% 오르더니, 12월엔 사상 처음으로 7만선을 넘겼다. SK하이닉스(000660)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11만원선에 안착했다. 투자자들은 ‘7만전자’와 ‘11만닉스’라고 빗대어 불렀다.
빅? 아니죠 ‘BBIG’이죠!
올해 한국 증시의 수퍼스타는 BBIG, 바로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네 가지 업종이었다. 미래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수직상승한 종목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연초 대비 15일까지 무려 140%가 넘게 올랐고, 삼성SDI는 약 130%, 셀트리온도 95%가량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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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파죽지세로 오르면서 주식시장은 매일같이 주가 고평가 논란에 시달렸다. 근거가 없는 지적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상장사들의 실적이 대폭 감소하는 와중에 주가만큼은 전 고점을 뚫고 사상 최고치를 향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 등 증시 전문가들은 보통 주가수익비율(PER)로 현재 주가가 비싼지 안 비싼지를 판단하는데, 분모가 되는 이익은 그대로인데 분자인 주가만 높아지면서 PER이 점점 높아져만 갔다. 테슬라의 경우 PER이 1000배에 달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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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 분노 일으킨 ‘남기락(落)’
지난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의 해임을 요청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는 2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발단은 주식 양도소득세 때문이었다. 현행 소득세법 시행령에는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주식 보유액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내년부터 낮추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홍남기 장관은 현행 유지를 강력히 밀어붙였고, 개인투자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안그래도 부동산 규제가 빡빡해서 투자할 곳이 없는데 이젠 주식투자마저 막느냐는 게 주된 이유였다.
동학개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남기 장관이 원칙을 고수하자 시장엔 불안감이 휩싸였다. 특히 코스닥 시장은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만큼 영향을 받기 쉬운데, 국정감사 이후 코스피 지수가 오를 동안 코스닥 지수는 크게 내리면서 홍남기가 주가를 하락시켰다며 ‘남기락’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결국 정부는 내년까지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유지하되 2023년부터는 예정대로 금융투자소득 도입에 따라 모든 상장주식에 대해 양도세를 내도록 방침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