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의 한 원로는 최근 일련의 조선, 건설업계의 분식회계 논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재무제표 자체를 믿을 수 없다니….
건설사나 조선사 재무담당자가 들으면 서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3조원대 손실이 하루 아침에 터진 대우조선해양(042660)이나 공사손실충당금으로 마땅히 반영했어야 함에도 감춘 손실액이 수천억원에 달한 것으로 거론되는 대우건설(047040) 투자자의 입장에 서보면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그리 심한 말은 아닐 겁니다.
분식회계 논란이 일면 언제나 ‘업계의 관행이다’, ‘예정원가를 계산하기 어려운 수주산업의 특수성이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는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을 존중하는 것 아니냐’는 등 업계의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변명만 하기에는 우리 자본시장이 그렇게 놔두질 않습니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되면 투자자들은 조선사나 건설사의 간판만 보면 치를 떨 수도 있겠지요. 회계 마인드를 근본적으로 다시 세울 때입니다.
회계 전문가들은 조선사와 건설사들이 회계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도 재무팀과 공사현장 간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회계 전문가들을 고용해 현장을 돌아보게 해야 합니다.
국제회계기준에 대한 이해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IFRS가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으로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이상 회사의 재량권을 널리 인정해주고는 있지만 제때에 반영해야 할 손실을 반영하지 않는 것까지 무작정 허용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발생한 재무정보를 집계하는데 그쳤던 과거의 회계기준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예상 손실까지 폭넓게 재무제표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회계기준의 원칙이지요. 그래서 더 구체적인 재무제표 주석 공시가 필요합니다.
건설사와 조선사, 그리고 이런 회사들은 감사하는 감사인은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만 재무제표를 작성하려 하지 말고 재무제표를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여러 공사 사업장의 손익을 한 데 뭉쳐 재무제표 주석에 공개한 정보가 과연 쓸모가 있을까요? 재무제표 이용자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개별 사업장의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그에 따른 손익은 얼마나 되는지. 이런 구체적인 정보입니다.
‘이 바닥이 원래 이렇다’는 말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부채비율이 높거나 이자보상배율이 낮아 재무상황이 나빠진 기업은 정부가 외부감사인을 강제로 지정, 신뢰성 있는 회계 정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건설업계와 조선업계는 여전히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인 취약업종입니다. 스스로 투명해지지 않으면 영원히 불투명한 산업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회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을 해나가 보셨으면 하는 게 회계 전문가들이 수주산업에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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