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st SRE]날카로워진 신평사 시장, 시선은 따뜻해졌다

[서베이]빨라진 등급 액션, 날렵해진 이슈 대처
  • 등록 2015-05-12 오전 7:00:00

    수정 2015-05-12 오전 7:38:35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신용평가사의 칼날이 예리해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2013년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세 단계 강등하며 투자등급에서 투자부적격(투기)등급으로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한국기업평가가 성역으로 통하던 AAA등급의 포스코 신용등급을 내렸다. 한기평이 AAA등급을 낮춘 것은 1999년 이후 15년 만이었다.

하향된 기업 수 대비 상향된 기업 수를 나타내는 등급 상하향비율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BBB급 이상인 투자등급 기준 2010년 10배를 훌쩍 웃돌던 등급 상하향비율은 2012년 1배 수준으로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신평 3사 모두 0.5배를 밑돌았다. 2개 기업의 신용등급이 하향될 동안 신용등급이 올라간 기업은 1개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달라진 신평사에 대한 시장 평가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21회 SRE에서 최근 6개월 동안의 등급 하향 움직임에 대해 묻는 질문에 32.3%(61명)가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답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던 지난 20회 SRE에서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이 20.5%(34명·중복응답)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으로 보는 목소리가 커진 셈이다.

시장에서는 20회 SRE까지만 해도 신평사의 빨라진 움직임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19회 SRE에서 현대그룹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한 데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최근 금융당국 검사 강화 등에 따른 보여주기식 움직임’이라는 답이 28.7%(37명·중복응답)으로 집계됐다. 변동 폭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답도 33.3%(43명)였다. 20회 SRE에서도 ‘보여주기식 움직임’이라는 답이 36.1%(60명)에 달했다.

‘안전지대’ 사라진 등급 강등

‘하향 속도를 빠르게, 하향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약해졌다. 여기에 동의한 응답자는 20회 SRE 24.7%(41명)에서 21회 SRE 24.3%(42명)으로 줄었다.

실제 신평 3사의 신용등급 변동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만 해도 연간기준 AA급에서 A급으로 떨어진 기업은 없었다. 등급 하향은 A급 이하 기업에 국한됐다. 2010년에는 경기 회복세 영향도 있겠지만 전 신용등급이 고루 상향세를 나타내고 주로 BBB급 이하 기업의 등급이 하향됐다.

2013년부터 등급 강등에 안전지대가 사라졌다. 지난 2013년 연초 AA급이었던 기업 가운데 연말 A급으로 떨어진 기업 비율은 한기평 0.87%, 한신평 0.86%, NICE신용평가 0.94%였다. 지난해에 이 비율은 한기평 6.4%, 한신평 5.6%, NICE신평 3.9%로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AAA등급인 KT는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조정됐고 포스코는 신용등급이 AA+등급으로 강등됐다. 올해 1분기에도 신평 3사 모두 AA급부터 B급 이하 기업까지 등급 조정이 고루 이뤄졌다.

채권매니저 ‘하향과도’ 응답도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응답에서는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와 채권매니저 생각이 갈렸다.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응답에 이어 ‘하향 속도를 빠르게, 하향 범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25.4%(18명)으로 바로 그 뒤를 이었다. 아직도 등급 조정이 될 만한 기업이 남아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비해 채권매니저는 ‘충분히 잘 하고 있다’에 이어 ‘등급 하향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21.2%(14명)로 조사됐다. 신용등급이 올라가야 채권 값이 상승(금리 하락)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채권매니저로선 등급 하향이 반가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이 늘어난 데 대해 자문위원 해석도 차이를 보였다. 한 자문위원은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긍정적 응답이 나오기 어려운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이는 지금 신평사가 잘 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더 이상 등급을 내리지 말라는 응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매니저 분야에서 두 번째로 ‘등급 하향이 과도하다’는 응답이 많았던 까닭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등급조정 적시성 한기평 1위

등급 조정 속도 관련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부분은 등급 적시성이다. 21회 SRE에서 도입된 신평사별 등급 조정의 적시성을 묻는 질문에 한기평이 5점 만점에 3.48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1회 SRE에서 등급 신뢰도가 3.23점으로 3점대 초반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꽤 높은 점수다. 높은 등급 적시성 점수는 앞서 등급 조정 속도를 묻는 질문에서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왔던 것과 일치한다. 21회 SRE 등급 신뢰도 점수 또한 3.44점으로 지난 20회 SRE 3.36점 대비 높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신평사에 대한 평가가 나아졌다. 한기평은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나 채권매니저, 브로커 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등급 적시성에 대해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의 점수는 3.58점으로 채권매니저 점수 3.36점보다 더 높았다.

한신평과 NICE신평은 등급 신뢰도와 달리 순위가 뒤집어졌다. 신뢰도 점수에서는 한신평 3.48점, NICE신평 3.38점으로 한신평이 앞섰지만 등급 적시성에서는 한신평 3.24점, NICE신평 3.27점으로 NICE신평 점수가 소폭 높았다.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와 채권매니저 모두 한신평보다 NICE신평에 높은 점수를 줬다. 채권브로커 등 기타 부문에서만 한신평 점수가 3.28점으로 NICE신평 3.22점보다 높았다. 다만 점수 차이가 미미해 유의미하지 않다는 게 자문단의 중론이다.

회사채 관련 업무비중이 높거나 등급 신뢰도가 높은 응답자군에서는 신평사 선호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타났다. 이들은 한기평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한기평의 경우 회사채 비중이 60% 이상인 응답자의 점수는 3.53점, 등급 신뢰도가 4점 이상인 응답자의 점수는 3.77점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등급 신뢰도가 높은 응답자는 한신평에 3.42점을, NICE신평에 3.57점을 줘 NICE신평의 등급조정 적시성에 긍정적으로 봤다. 회사채 비중이 높은 응답자는 각각 한신평에 3.25점을, NICE신평에 3.17점을 매겨 한신평의 등급조정 적시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한 자문위원은 “등급 신뢰도에서도 1위를 차지한 한기평에 대한 평가가 등급 조정의 적시성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1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21회 SRE는 2015년 5월1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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