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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앞으로 메타버스는 공간의 제약을 넘어 연출, 배우, 관객 등 모든 주체가 한 곳에서 상호작용하는 이상적인 예술의 장이 될 것입니다.”
지난 21일 서울 동대문디지털프라자(DDP)에서 만난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메타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공연계에 새 바람이 불리라 단언했다. 과거 일방향의 예술공연 흐름이 메타버스와 만나 진화를 거칠 것이란 확신이다.
이 교수는 한예종 아트앤테크놀로지랩(AT랩) 연구소장을 겸임하며 지난 몇 년간 첨단 기술과 공연의 결합을 시도해 왔다. 국내 대표 석학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아들이기도 한 이 교수는 과거 배우 장동건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 ‘더 워리어스 웨이’를 연출하는 등 국내외 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허수아비 H’는 이 교수가 최근 국내 최초로 선보인 ‘메타버스 공연’이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DDP에서 초연하는 ‘허수아비 H’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 영화제의 최고 화제작으로 포브스 등 외국 언론으로부터 ‘시대를 앞선 작품’이란 호평을 받았다.
‘허수아비 H’는 동시에 4명의 사용자가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 직접 배우와 상호작용 한다. 공연장에선 허수아비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실제 무대에서 연기하고 이용자들은 각각 VR기기를 쓴 채 메타버스 공간 속에서 연기 중인 배우와 어울리는 식이다. 시각은 물론, 촉각과 후각까지 다채로운 자극을 주는 게 특징이다.
그는 “평소 게임을 좋아했는데, 영화에서도 게임처럼 관객들과 내러티브를 함께 써나가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며 “6~7년 전 가상현실(VR) 기기의 보급이 늘면서 이 같은 생각이 더 커졌고, (공연계에도)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메타버스 공연을 5~6년 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 메타버스의 잠재성은 업계에선 잘 알고 있었다”며 “지난해 초 일반 공연을 한 뒤 내년 또는 내후년쯤 메타버스 공연을 시도하려고 했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장 공연이 많이 없어지면서 이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타버스 공연을 하는 팀은 전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이 교수의 메타버스 공연이 세계에서 두번 째일 정도로 아직 시작단계다. 보수적인 국내 영화계 동료들도 “이런 것을 왜 하느냐”고 뜯어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메타버스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할 것으로 믿고 자신의 ‘꿈’을 걸었다.
그는 “초창기 스토리텔링을 구축하는 게 힘들었다. 관객이 아바타가 돼 공연 속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상대방의 반응, 자유도 등의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며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성 영화와 달리 관객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는만큼 신경써야 할 요소가 많다”고 언급했다.
또 “현재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공연만을 위한 게 아니어서 시스템적으로 불편한 점이 매우 많다”며 “현재 그래픽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데, 관객들이 봤을 때 예술적 감흥을 잃게 만들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정부, 학계, 기업들의 지원도 늘어 다양한 시도를 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교수도 LG유플러스, SK텔레콤, 포스텍 등과 협업하고 있다.
이 교수는 “LG유플러스, 포항공대와는 정부 과제를 함께 하고 있는데, 내후년까지 메타버스 공연 속 배우를 AI화하는 것을 진행하고 있다”며 “SK 쪽과는 김덕수 선생님의 사물놀이를 실사로 VR콘텐츠화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내년 상반기면 완성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이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성 매체들과 차별성 고민 없이 ‘뭐라도 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기업, 단체들이 많은데 결국 수준 이하의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긴 시야로 접근해야 메타버스를 통해 실물경제를 넘어 더 큰 경제의 장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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