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묘지 위 지은 집…피란수도 '부산' 속살 보다

역사의 흉터마저 아름답다…'진짜 부산' 여행
한국전쟁 때 산중턱 판자촌 가로지른 '산복도로'
일제강점기 공동묘지 위에 세운 '비석문화마을'
천마산서 부산항대교 야경 내려다보니 숨이 탁
  • 등록 2016-08-26 오전 6:05:00

    수정 2016-08-26 오전 6:05:00

부산의 야경 일번지로 꼽히는 동백섬에서 바라본 마린시티. 마린시티는 수영만 매립지에 조성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단지로 아픈 역사를 딛고 들어선 부산발전상의 전형으로 꼽힌다. 고층빌딩이 빽빽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미래도시를 보는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이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화려한 도시. 진짜 부산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떠올린 부산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를 곱씹으면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산복도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긴 산복도로는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의 길이었다. 그 길이 언젠가부터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알려지면서 여행객에게 각광받고 있다. 삶의 터전이자 역사를 품은 그 길에 부산의 참모습이 들어 있어서다.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이기도 했고 여전히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사는 이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인생의 공간이기도 했다. 아픔도 있다. 물 한 동이를 길어 올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고난의 행로였다. ‘화려한 도시’ 부산에 가려진 ‘진짜 부산’의 모습이다.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의 길 ‘산복도로’

부산에는 유난히 산복도로가 많다. 한국전쟁 당시 산 중턱에 판자촌을 가로질러 만든 길이 바로 산복도로다. 부산 동구의 수정동·초량동, 중구의 영주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이 길에는 고향을 등진 이들의 궁핍했던 삶이 눈물처럼 고여 있다. 동구는 산복도로와 사연을 묶어 초량·호랭이·부산의부산·수정·좌천 이바구길과 부산포개항가도 등 모두 7개의 여행길을 만들었다.

‘초량 이바구길’에서 볼 수 있는 168계단과 최근 들어선 모노레일.
이 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초량 이바구길’이다. 부산역 건너편에 자리한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 ‘남선창고’ 터에서 출발해 옛 백제병원, 이바구전망대, 우물터, 168계단, 김민부전망대, 당산, 망양로로 이어지는 코스다. 초량 이바구길 끝이 산복도로다. 도로 곳곳에 세워 둔 유치환우체통, 마사코전망대,이바구공작소 등을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맛도 각별하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부산 원도심 일대와 부산항은 그야말로 백만불짜리 전경이다. 168계단 옆의 주택가 사이에 지난해 새로 설치한 모노레일도 독특한 경관을 빚어낸다.

유치환우체통을 지나면 또 하나의 이바구길이 있다. ‘수정 이바구길’이다. 수정동 일대에서 근·현대 부산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수정동 일대에는 매축지기념비와 정란각 등 근대 부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부산 이바구길’은 부산의 지명이 유래한 곳으로 알려진 증산을 향하는 코스다. ‘가마 부(釜) 뫼 산(山)’을 쓰는 부산이 이름처럼 가마솥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부산 이바구길의 출발지인 자성대에서 부산의 지명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코스는 두 곳을 이으며 범일동 언저리의 역사적인 장소를 발굴해 놨다. 동구 출신 독립투사 최천택의 길, 왜성터, 부산의 최초 성당인 범일성당, 옛 교통부 자리 등을 포함한다.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도 이 길에 있다. 안용복은 조선시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낸 인물. 좌천동에서 태어나 수군 출신의 평범한 어부였던 그는 1693년(숙종 19년)·1696년(숙종 22년) 두 차례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를 침략한 왜인을 몰아내고 일본 막부로부터 조선땅을 확인하는 공식 외교문서를 받아냈다. 그의 기록은 오늘날까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 이 길은 부산개항가도와도 연결돼 있다. 지하철 좌천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해 부산포 개항가도 진입 골목(벽화), 정공단·일신기독병원, 부산진교회, 부산진일신여학교, 안용복장군 기념 부산포개항문화관, 제일아파트, 문화아파트, 증산공원까지 이어진다.

1905년 호주 선교부가 세운 ‘부산진일신여학교’. 1919년 3·1운동 때 이 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부산지역의 만세운동이 시작됐다.


◇묘지 위에 마을이 들어서다

서구 아미동 산19번지. ‘비석문화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피란수도 부산’의 가슴 아픈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사연은 이렇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장사라도 하면 먹고 살겠지’ 하는 마음으로 부산역 앞 부산일보 옆 골목으로 집결했다. 당시 부산시는 공무원을 동원해 피란민에게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과 천막을 나눠줬다. 그것을 들고 찾아간 곳이 청학동·당감동·대신동·천마산, 그리고 아미동이었다.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한국전쟁 피란시절 일본인이 버리고 간 공동묘지 위에 움막을 짓고 살아야만 했던 가슴아픈 현장이지만 희망으로 살아왔던 부산의 살아있는 행복마을이기도 하다.


지금의 ‘비석문화마을’이 당시 피란민 일부가 찾아간 아미동이다. 그런데 몸 뉘일 곳이라도 있겠다는 생각에 찾아간 피란민들은 이내 아연실색했다. 바로 공동묘지였기 때문이다. 이 묘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1945년 패망과 함께 일본인은 황급히 귀국길에 올랐고 수백여기의 무덤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옆에는 화장장도 있었다.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곳곳서 보이는 비석. 해방 이후 일본인이 버리고 간 공동묘지 위에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집을 지으며 담을 쌓거나 주춧돌을 세우는 데 비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피란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들은 묘지 위에 천막을 치고 집을 지었다. “산속이든 묘지 위든 우선 살아야 했으니까.” 이 마을 주민인 이만석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다행히 묘지터는 집의 축대로 사용할 수 있어 집짓기에 유리했다. 지금도 마을계단이나 담장에는 당시 사용했던 비석이 곳곳에 박혀 있다.

마을 입구에 최근 도로 확장공사를 하며 드러난 옛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묘의 상석 위에 그대로 벽체를 올리고 지붕을 씌운 ‘하꼬방’이다. 무덤에 대한 두려움보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하꼬방’. 일본인들의 공동묘지를 그대로 활용해 축대를 세운 집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죽은 자의 쉼터가 산 사람의 안식처가 된 곳이다.
집의 형태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천막집에서 판잣집으로, 다시 루핑집·슬레이트집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갔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와 양옥집이 됐다. 비석문화마을에 있는 집을 보면 일반적인 집들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여행길의 길잡이였던 부산여행특공대의 손민수 반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자세히 보면 일층보다 폭을 넓힌 이층을 볼 수 있다. 땅은 주인이 있지만 하늘엔 주인이 없었기에 이층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쓰려는 방편이었다. 지붕으로 사용한 슬레이트 위에 그대로 이층을 올리기도 했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당시로선 성장한 자녀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부산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부산 밤풍경의 주역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광안대교였다. 부산에서 야경을 감상한다는 것은 광안대교를 어디서 볼 거냐는 말과 맥이 통했다. 황령산과 금련산이 야경 명소로 인기였던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졋다.

최근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부산의 야경명소는 동구의 유치환우체통이다. 여기선 2014년 개통한 부산항대교를 중심으로 탁 트인 바다와 부산항의 아름다운 밤을 만끽할 수 있다. 부산항대교와 부산항의 모습을 다른 포인트에서 담고 싶다면 중구 스카이웨이전망대와 역사의 디오라마전망대도 최적의 장소다. 산 중턱에 있는 집과 거리의 노란 가로등과 키다리 아저씨처럼 길게 늘어선 아파트의 불빛, 색색의 빛을 뽐내는 부산항대교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 안에 담아낼 수 있다.

유치환우체통에서 바라본 부산항대교.


그렇다면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천마산 중턱 산복도로에 자리잡은 ‘금수현 음악살롱’이다. 지휘자 금난새의 부친인 금수현은 영주동 산복도로에 살았는데 부산으로 피란 온 예술인들에게 헌신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금수현 음악살롱은 당시 한국을 대표했던 음악가 금수현을 기념하고 뜻을 기리는 공간이다.

천마산 아래 누리바라기 전망대도 최근 뜨고 있는 야경명소다. 서구 천마산로 남부민1동 목화빌라 근처의 산복도로에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부산항 일대의 야경은 보석을 뿌린 듯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부산항대교의 조명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전망대 이름은 세상을 뜻하는 ‘누리’와 바라보다라는 뜻의 ‘바라기’를 합해 만들었다. 천마산의 유래인 하늘에서 내려온 용마(龍馬)를 형상화한 출입문도 볼거리다.

천마산 아래 누리바라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부산항대교의 야경. 왼쪽 롯데백화점 옥상 위로 광안대교의 주탑이 살짝 보인다.


해운대의 마천루 야경은 동백섬 입구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게 가장 운치 있다. 동백섬은 부산의 야경 일번지로 꼽히는 마린시티를 마주보고 있다. 마린시티는 수영만 매립지에 조성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단지. 고층빌딩이 빽빽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미래도시를 보는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이다.

부산의 야경 일번지로 꼽히는 동백섬에서 바라본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마린시티는 수영만 매립지에 조성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단지로 아픈 역사를 딛고 들어선 부산발전상의 전형으로 꼽힌다.
◇여행메모

수정산빈대떡집의 김치찌개. 여기선 두 가지에 놀라는데 하나는 식당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유럽의 고급레스토랑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다른 하나는 믿을 수 없이 착한 가격이다. 김치찌개는 4인분에 1만원.
△여행팁=스토리텔링 전문여행사 부산여행특공대가 운영하는 이바구버스투어 ‘타임머신여행’을 이용하면 부산의 산복도로를 쉽게 여행할 수 있다. 버스는 부산역 광장 주차장 앞에서 출발하며 매일 2회(오전 10시, 오후 2시) 운영한다. 코스는 부산역~좌천동 가구거리~부산포개항문화관~유치환우체통~168계단 모노레일 체험 등 동구의 명소를 둘러본다. 성인 2만원, 어린이 1만원.

△먹을곳=수정산공영주차장 위쪽 등산로 초입에 있는 ‘수정산빈대떡집‘. 이 집 단골들은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4인분 1만원)나 얼큰한 닭볶음탕, 속풀이 콩나물해장국(4000원) 등의 메뉴도 많이 찾는다. 단 카드결제가 안 되니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초량동 산복도로변 고급 저택에 자리잡은 찻집 ’‘달마갤러리’(051-917-2005)에서는 사찰식 산채비빔밥(1인분 1만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잠잘곳=해운대에 있는 아르피나(051-731-9800)가 가격 대비 추천할 만한 숙소다. 부산관광공사가 운영한다. 유스호스텔이지만 깨끗한 시설과 호텔급 서비스를 자랑한다. 해운대 여느 호텔에 비해 가격이 파격적으로 저렴하고 무엇보다 위치·접근성이 좋다.

부산의 야경 일번지로 꼽히는 동백섬에서 바라본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마린시티는 수영만 매립지에 조성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단지로 아픈 역사를 딛고 들어선 부산발전상의 전형으로 꼽힌다.
영도청학수변공원에서 바라본 부산항(북항)대교.
누리바라기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시내 전경.
누리바라기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항대교.
누리바라기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항대교. 그 뒤로 어선들이 보인다.
누리바라기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항대교와 영도의 야경.
누리바라기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도의 야경. 왼쪽으로 영도대교, 부산대교, 부산항대교가 차례로 보이고 오른쪽에에 남항대교가 보인다.
누리바라기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그리고 부산항(북항)대교의 야경. 왼쪽 롯데백화점 뒤편으로는 광안대교의 주탑이 살짝 보인다.
부산의 야경 일번지로 꼽히는 동백섬에서 바라본 광안대교.
1891년 호주 선교부가 좌천동에 설립한 ‘부산진교회’. 1905년 바로 옆에 부산진일신여학교도 세웠는데 1919년 3·1운동 때 이 교회 교인이자 학교 선생들이 주도해 이 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부산지역의 만세운동이 시작됐다.
승강기를 타고 증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가 덩그러니 서 있다.
비석문화마을의 골목길.
수정산빈대떡집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
수정산빈대떡집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
수정산빈대떡집에서 바라본 부산의 초저녁.
수정산빈대떡집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
디오라마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영도청학수변공원에서 바라본 부산항대교.
유치환우체통에서 바라본 부산 야경.
유치환우체국통은 부산의 산복도로 중 최고의 전경을 자랑한다.
유치환우체국통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부산의 산복도로 전망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유치환 우체국통.
영도 청학저수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대교.
영도 청학저수지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대교.
유치환우체통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부산여행특공대 버스투어.
손민수 부산여행특공대 반장
증산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초량동 달마갤러리의 사찰식 산채비빔밥. 나물무침은 약하게 간을 해서 싱거울 수 있지만 매실 등을 넣어 볶은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간이 적당히 베여 입맛을 돋우는 게 이곳만의 매력이다.
초량동 달마갤러리의 사찰식 산채비빔밥
수정산빈대떡집의 ‘콩나물국밥’
비석문화마을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2층으로 올라갈 수록 넓어진다는 점이다.
‘비석문화마을’의 골목길. 한국전쟁 피란시절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움막을 짓고 살아야만 했던 가슴 아팠던 현장이지만 희망으로 살아왔던 부산의 살아있는 행복마을이다.
비석문화마을의 ‘하꼬방’. 일본인들의 공동묘지를 그대로 활용해 축대를 세운 집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죽은 자의 쉼터가 산 사람의 안식처가 된 곳이다.
비석문화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집 ‘미미반점’.
비석문화마을의 한 주민이 화장실 공사를 위해 바닥공사를 하던 중 거꾸로 땅에 박혀있던 불상과 상석을 발견해 대문 앞에 모셔두고 있다.
비석문화마을에선 무덤의 비석이나 상석을 마을의 계단이나 바닥, 담장, 문지방 등 건축자재로 이용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는 무덤의 경계석과 외곽벽을 집의 축대로 이용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곳곳서 보이는 비석. 해방 이후 일본인이 버리고 간 공동묘지 위에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집을 지으며 담을 쌓거나 주춧돌을 세우는 데 비석을 사용했다.
부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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