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판사다]“같은 사건에 다른 판결” 법원 못 믿겠다

'사법부 신뢰한다' 30.7% 그쳐
엇갈린 판결이 사법부 신뢰 허물어
정치적 사건서 엇갈린 판결 잦아
  • 등록 2015-07-24 오전 6:30:00

    수정 2015-07-24 오전 8:32:15

[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면서 어떠한 형식의 부당한 영향도 받지 않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2011년 9월27일 대법원장 취임식)

“법관이 신(神)의 역할이라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인간이기를 기대하는 국민의 마음은 당연하다.” (2015년 4월1일 신임법관 임명식)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사법부의 존립기반이므로 법관들은 시대 변화를 잘 읽고 국민이 법관에게 기대하는 열망을 수렴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15년 5월11일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소통 콘퍼런스)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1년 취임한 이후 법관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선 항상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사법부’에 대해 강조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여전히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7월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0.7%에 불과했다. ‘검찰·경찰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 32.4%보다 낮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42개국을 대상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27%가 ‘사법부를 믿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국 전체의 평균치는 54%에 달했다.

양 대법원장을 비롯해 전국의 고위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 역시 사법부의 신뢰 제고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올 3월 열린 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도 “최근 우리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공들여 온 노력이 크게 빛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며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사법부의 노력에도 신뢰도 평가 결과가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법부 내에서 나오는 엇갈린 판결 탓이다.

지난 3월26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 미묘한 시각차이를 드러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영장도 없이 스무날 동안 중앙정보부에 구금됐던 당시 서울대생이 낸 손해배상 청구 상고심에서 “긴급조치 발동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다”면서 “다른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구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9조 1항과 제11조 2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의 행사를 사실상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하면 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긴급조치 9호의 위헌 여부와 관련이 없는 손해배상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장기간 구금을 당했는데 국가의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급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통합진보당 경선 대리투표 혐의로 기소된 4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수원지법과 창원지법 등 다른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피고인 400여명은 유죄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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