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북한 압록강 일대 대규모 수해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수해 당시 긴급히 대피하던 주민이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보다 텔레비전, 태양광 발전기를 먼저 챙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 북한 혁명사적관 외벽에 걸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초상화. (사진=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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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당국이 수해민 1만 3000여명을 지난달 15일 평양으로 이송해 천막으로 만든 임시 거처를 제공하고 어린이 교육을 하는 등 선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생기고 있다고 지난달 26일 전했다.
RFA는 함경북도 무산군에 거주하는 익명의 협조자를 인용해 과거에는 홍수로 대피할 때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먼저 들고 나오는 ‘미담’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텔레비전, 태양광 발전기, 변압기 등 주요 전자기기를 들고 대피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 주민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 지난 8~9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사진=노동신문/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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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2016년 발생한 함경북도 홍수 당시 북한 기관지는 김씨 부자의 초상화를 지키다가 숨진 사례를 ‘미담’으로 소개하며 체제 선전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몸에 걸친 옷마저 찢겨나가는 격류 속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보위하기 위하여 억세게 틀어쥔 배낭끈을 끝끝내 놓지 않았다”며 “습기 한 점 배지 않은 20여 상의 초상화, 한목숨 바쳐 신념과 의리를 지킨 그 충정의 인간 앞에 누구나 숙연히 머리 숙였다”고 추켜세웠다.
북한 전문가인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 대표는 RFA에 이번 수해에서 북한 주민들이 초상화보다 생필품 등을 우선 챙기고 대피한 사례를 두고 “집에 걸려 있는 초상화는 김일성, 김정일이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김일성, 김정일은 과거 사람”이라며 “‘이제는 김정은 시대’라는 선전도 하고, 과거의 통치 구조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분위기가 있다. 초상화를 무엇보다 아껴야 한다는 마음이 사람들의 의식에서 많이 사라지지 않았겠는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