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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이뤄진 금융당국의 신평 3사 중징계 조치는 신평사들이 한층 엄격한 등급평가에 나서게 한 계기가 됐다. 경기 부진 여파 속 신평사의 과감한 등급 하향 움직임으로 ‘등급 인플레이션’에 대한 문제 제기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발행사에 의존하는 근본적인 수입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국내 신평사의 신뢰도 문제는 다시 거론될 수 있다.
신용평가 전문가들이 신평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거론하는 대표적인 정책이 순환평가제와 지정제다. 모두 발행기업이 주는 등급평가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 신평사들이 돈을 받고 우량한 등급을 주는 ‘등급장사’ 행위를 막아보자는 취지로 나온 정책 대안들이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도입된 사례가 없는 만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순환평가제는 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신평사들이 돌아가면서 하자는 안이다. 신평사 간 일감 수주 경쟁을 없애 오로지 정확한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은 있지만, 기존 신평사들의 혁신 동기를 제약할 수 있고 새로운 신평사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애당초 막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또 평가 도중 신평사를 바꾸게 되면 평가 대상 기업의 신용도를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순환평가제와 지정제 모두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런 대안들이 우리나라 여건에서 도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편 기업이 2곳 이상의 신평사로부터 신용등급을 평가받도록 한 복수평가제가 1994년부터 시행되면서 ‘등급장사’ 행위를 방지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다양한 문제점도 노출하고 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순환평가제와 지정제 등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 시험 테스트를 해볼 필요가 있다“며 “복수평가제는 신평사간 매출 경쟁이 가열될 수 있기 때문에 전면 폐지하기보다 일정 부분 유지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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