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연극, 대학로 단골메뉴된 까닭은

원작 번역극 매달 1~3편씩…올해 20여편
장기불황 등 한국과 닮은꼴 소재
다양한 장르·치밀한 구성
어두운 이야기 유쾌하게 풀어내
'웃음의 대학' 앙코르·'해변의 카프카' 초연
'데스노트' '오케피' 등 뮤지...
  • 등록 2015-11-19 오전 6:18:00

    수정 2015-11-19 오전 6:18:00

일본 번역극이 최근 국내 공연시장에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 미타니 코키의 동명원작 뮤지컬 ‘오케피’의 연출·연기를 맡은 배우 황정민(왼쪽부터), 2년만에 앙코르공연하는 2인극 ‘웃음의 대학’의 서현철과 박성훈, 한·일합작극 ‘태풍기담’의 박상종과 오다 유타카(사진=샘컴퍼니·마케팅컴퍼니아침·서울문화재단).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우리와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대처방식이 조금씩 다른 게 흥미롭다”(일본희곡 번역가 이홍이), “억지로 꾸미거나 유치한 부분이 거의 없다. 탄탄한 대본일수록 어떤 것을 첨가하지 않아도 좋은 공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배우 이시훈), “한국사회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연출가 박근형).

일본 번역극이 국내 공연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올 1월부터 연말까지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주요 작품 수는 줄잡아 20여편. 이중 상당수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단순히 라이선스 수준을 넘어 한일 공동제작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실험성이 강한 작품부터 스릴러, 코믹극 등 장르를 막론하고 국내 공연계에 흐름을 형성해가는 모양새다. 일본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으로 일본식 유머코드가 어색하지 않은 점도 한몫을 했다는 게 공연 관계자들의 전언. 장기불황·대지진·히키코모리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하게 읽히는 것도 무기다. 마침 한일수교 50주년인 만큼 앙코르공연은 물론 초연작까지 줄을 잇고 있다.

연극 ‘웃음의대학’에서 ‘검열관’ 역을 맡은 남성진. 남성진은 연기 생활 24년 만에 희극에 처음 도전했다(사진=마케팅컴퍼니아침).
미타니 고키, 유쾌한 웃음으로 강타

‘웃음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일본 극작가 미타니 고키(54)는 하나의 브랜드라 불릴 만하다. 연말에 개막하는 뮤지컬 ‘오케피’(12월 18일~2016년 2월 28일 LG아트센터)를 포함해 올해에만 3개 작품이 잇달아 국내 무대에 올라서다. 지난 5월 초연한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입소문만으로 인기몰이를 한 데 이어 연극 ‘웃음의 대학’(2016년 1월 24일까지 대학로예술마당 1관)이 2년 만에 앙코르 중이다.

‘웃음의 대학’은 2008년 국내 초연 후 2013년까지 누적 관객 수 33만명을 기록한 대표적인 흥행작. 2차대전을 배경으로 희극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냉철한 검열관과 웃음에 모든 것을 건 극단 웃음의 대학 작가가 벌이는 7일간의 해프닝을 그렸다. 극중 인물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소동과 상황극이 작품의 묘미다. ‘작가’ 역을 맡은 배우 이시훈은 “연기를 하면서 내 대사에 웃음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며 “어느 한 지점이 웃긴다기보다 웃음이 축적돼 후반부에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는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언어유희가 미타니의 매력 중 하나다. 배우 박성훈은 “대사량이 엄청나다. 비슷한 말도 많다. ‘검열관님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 ‘어째서요’ ‘이유를 좀’ ‘왜 안 되는 겁니까’ 식으로 계속 나열한다”며 “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다 있어서 정확하게 대사를 해야 한다. 그것이 웃음의 포인트”라고 귀띔했다.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오케피’는 1000만 배우 황정민이 연출은 물론 배우로도 활약해 하반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제작사 샘컴퍼니 관계자는 “미타니의 드문 대극장용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단원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웅장하다”며 “캐릭터마다 생명력이 강하다. 미타니 특유의 언어유희도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18인조 오케스트라와 30개 이상의 악기로 들려주는 넘버는 또 다른 매력이다.

관계의 시선, 우리 모습 닮았네

무거운 문제를 일본 특유의 가볍고 유쾌한 터치로 어루만지는 작품들은 한국 사회에도 공감할 만한 메시지와 울림을 준다. 18일까지 공연한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나 지난 8일 막을 내린 한일 공동제작극 ‘태풍기담’도 다르지 않다. ‘도쿄타워’로 국내에 알려진 극작가 쓰치다 히데오의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남자들의 유치한 편가르기를 다룬 블랙코미디로 인간의 본성을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풀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원작으로 한 ‘태풍기담’은 언어와 권력의 힘에 대한 질문까지 보탠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12월 19일~2016년 2월 2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는 현대 일본의 고민이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 있다.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의 미완성 희곡이 원작이다. 작가 겸 연출가 호라이 류타가 완성했다.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적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가 2년 동안 그곳에서 지낸 두 군인의 실화가 모티프다. 극한 상황에서 겪는 두 사람의 대립과 이해에서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연극 ‘해변의 카프카’의 원작자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왼쪽)와 연출 니나가와 유키오.
◇일상 담은 섬세한 대사의 힘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소설을 옮긴 연극 ‘해변의 카프카’(24~28일 LG아트센터)도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난다. 무라카미의 장편소설 중 연극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가 삶과 죽음, 어른과 아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무대화했다. 특유의 몽환적이고 스펙터클한 연출로 작가가 말하려 한 의미가 생명력을 얻는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히는 것이 특징.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는 너인 거고, 너 이외에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전진하고 있어”(소설 ‘해변의 카프카’ 중).

대사가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 한 편 더 있다. 지난 5월에 공연한 이와이 히데토의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다. “세상과 어우러지는 연습 중입니다”처럼 소소한 일상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사실적이면서도 치밀하고, 또 섬세하게 대사로 표현하면서 깨달음과 감성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일상의 한 단면을 뚝 잘라 그대로 무대 위에 옮겨놓은 듯한 대사는 현대인의 삶의 풍경과 고독한 내면을 보여준다.

연극 ‘해변의 카프카’의 장면모음(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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