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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하마평에 오를 때부터 들려온 얘기다. 조 후보자에 대한 비하가 아닌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전 공정거래위원장)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공정위에서 후임 위원장으로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려한 목소리다. 조 후보자와 김 실장간의 사적인 인연도 한 몫을 했다.
그가 지난 9일 공정위원장 내정 직후 밝힌 소감은 아쉬웠다. 쏟아지는 질문에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었다. 청문회를 앞둔 시점이어서 조심스럽다고 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한 축인 공정경제를 책임질 새로운 수장의 의지와 방향은 보여 줬어야 했다. 시장경제 주체에게 불확실성은 가장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사실 조 후보자의 공정거래에 대한 식견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 실장이 현실 참여형 학자였던데 비해 조 후보자는 학구파였던 탓이다. 2003년 발표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정책의 평가 및 과제’ 논문은 탁월한 식견과 논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조 후보자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잘못된 대기업 지배구조와 과도한 부채는 이미 상당 부분 시정됐다. 김 실장 말대로 재벌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또 진화했다. 시장 친화적이었다고 평가를 받은 김 실장의 정책을 이어받겠지만, 한일 경제전쟁 등 변화된 상황 속에서 진화된 공정위 수장의 판단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성장엔진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이 규제 개혁이다. 진입장벽을 허물어 기존 시장을 독과점한 채 안주하고 있는 기업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일례로 공정위는 최근 공기업의 갑질을 개선하는 대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정작 공기업의 독과점 구조 개선이라는 핵심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공정위가 지난 2년간 적극적으로 규제개혁에 나서지 못한 것은 기득권과 충돌 우려가 사실 컸지만 공정위가 경제분석 분야에 충분한 역량을 쌓지 못한 탓도 있다.
경제분석 기능이 강화되면 기업 결합(M&A) 심사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제때 공정위의 승인이 떨어져야 하지만, M&A 신청이 들어온 후에야 시장분석을 시작하기 때문에 심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고, 기업들의 리스크만 확대될 뿐이다.
조 후보자가 ‘김상조 아바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