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부근에서 멈춘 A씨는 중앙선 안전지대로 들어가 천천히 직진하며 교차로를 한 번에 통과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 중앙선 안전지대 옆 1차로에서 운행 중이던 승합차가 A씨가 운전 중인 구급차 앞쪽으로 불법유턴을 시도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A씨는 승합차를 들이받았고 이 사고로 구급차 조수석에 탑승했던 환자의 보호자가 눈 주위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검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제3조 2항 1호(통행금지 또는 일시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 지시를 위반해 운전하다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면 5년 이하의 금고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를 위반한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 약식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요청대로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정식재판(2014고정2467)을 청구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단독 김민정 판사는 “검찰의 공소제기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기소에 오류가 있어 유·무죄를 심리할 필요도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A씨는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를 운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시간이 지체할수록 생명이 위태로운 심정지 환자를 후송하고 있었다”며 “일부 차량이 진로를 비켜주지 않아 지체되자 중앙선 안전지대를 통과해 교차로를 지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와 같이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 긴급자동차는 안전지대에도 진입해 통행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사고가 난 것도 승합차의 불법유턴에 따른 것으로 A씨가 교통안전에 주의할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변회와 이데일리가 뽑은 이달의 판결’ 선정 자문위원인 김기천 변호사(38·사법연수원 36기)는 “이 판결은 수사기관의 기계적이고 무리한 기소에 제동을 걸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방관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중앙선 안전지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차량들의 양보부족이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 변호사는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 미이행은 2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처벌 할 수는 있지만 시군공무원이 현장에서만 단속할 수 있는 등 사실 실효성이 없다”며 “아직은 아쉬운 시민의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