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판결]긴급환자 이송 중 사고낸 '119' 처벌 받아야 할까?

심정지 환자 이송 중 중앙선 넘어 이동하다 불법유턴 차량과 교통사고
檢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 약식기소
재판부 “구급차 긴급 상황엔 중앙선 넘을 수 있어” 공소기각
  • 등록 2015-11-15 오전 8:00:00

    수정 2015-11-15 오후 4:29:15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2015년 3월 24일 낮 12시30분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호흡과 맥박이 끊긴 60대 환자를 이송중인 119구급대원 A(32)씨는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사이렌과 경광등을 울리며 비켜달라고 했지만 차량들이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정지 환자는 응급조치가 늦어질수록 산소공급 중단에 따른 뇌손상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교차로 부근에서 멈춘 A씨는 중앙선 안전지대로 들어가 천천히 직진하며 교차로를 한 번에 통과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 중앙선 안전지대 옆 1차로에서 운행 중이던 승합차가 A씨가 운전 중인 구급차 앞쪽으로 불법유턴을 시도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A씨는 승합차를 들이받았고 이 사고로 구급차 조수석에 탑승했던 환자의 보호자가 눈 주위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검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제3조 2항 1호(통행금지 또는 일시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 지시를 위반해 운전하다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면 5년 이하의 금고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를 위반한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 약식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요청대로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정식재판(2014고정2467)을 청구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단독 김민정 판사는 “검찰의 공소제기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기소에 오류가 있어 유·무죄를 심리할 필요도 없다는 판단이다.

도로교통법 제13조 3항과 같은 조 5항에 따르면 운전자는 도로 중앙선 우측 부분을 통행해야 하고 안전지대 등 진입이 금지된 장소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하지만 긴급자동차는 다르다. 도로교통법 제29조 1항과 같은 조 2항에 따르면 긴급자동차는 사이렌을 울리거나 경광등을 켜면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 중앙선을 넘을 수도 있고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려도 무방하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A씨는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를 운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시간이 지체할수록 생명이 위태로운 심정지 환자를 후송하고 있었다”며 “일부 차량이 진로를 비켜주지 않아 지체되자 중앙선 안전지대를 통과해 교차로를 지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와 같이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 긴급자동차는 안전지대에도 진입해 통행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사고가 난 것도 승합차의 불법유턴에 따른 것으로 A씨가 교통안전에 주의할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A씨는 긴급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도로교통법이 긴급자동차에 허용하고 있는 바에 따라 중앙선 안전지대에 통행한 것으로 안전표시 지시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검찰은 이 구급차가 운전보험에 가입돼 있었기에 규정에 따라 공소를 제기할 수 없음에도 이를 위반해 기소했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서울변회와 이데일리가 뽑은 이달의 판결’ 선정 자문위원인 김기천 변호사(38·사법연수원 36기)는 “이 판결은 수사기관의 기계적이고 무리한 기소에 제동을 걸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방관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중앙선 안전지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차량들의 양보부족이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 변호사는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 미이행은 2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처벌 할 수는 있지만 시군공무원이 현장에서만 단속할 수 있는 등 사실 실효성이 없다”며 “아직은 아쉬운 시민의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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