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대신 예금…거액계좌 2년새 100조 늘었다

[예금에 몰리는 뭉칫돈]①
은행 정기예금 '10억원 초과 계좌' 비중 60% 달해
장기 불황에 보수적 경영 기조
설비투자 6분기째 마이너스
기업 47% "내년에도 긴축경영"
  • 등록 2019-12-16 오전 6:00:00

    수정 2019-12-16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내 주요 시멘트 제조업체인 A사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방산업인 건설 경기가 부진한 탓에 신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긴축 경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시멘트는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시멘트업계의 총 출하량 5784만8396톤 가운데 내수 비중이 5671만577톤에 달했다. 전체의 98%가 넘는다. 국내 건설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면 시멘트업계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A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내년 실적도 좋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보수적인 경영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하지 않는 기업과 거액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투자는 커녕, 남은 현금을 그냥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두기 바쁘다.

15일 한국은행과 주요 시중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중 10억원 초과 계좌의 잔액은 440조2070억원을 기록했다. 전체(727조4790억원)의 60.5%가 거액 계좌다. 10억원이 넘는 돈을 정기예금에 넣는 예금주는 고액 자산가를 포함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고액기업 예금주로 추정된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정책당국 한 관계자는 “정기예금에 10억원 이상을 넣은 거액 예금주는 개인(개인사업자 포함)보다 대부분 법인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정기예금의 거액 계좌 비중이 60%를 넘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2015년 당시 상반기와 하반기 10억원 초과 정기예금 비중은 각각 51.7%(잔액 292조3850억원)와 53.5%(304조8250억원)였고, 그 이전에는 줄곧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2017년 상반기 56.6%(339조1960억원)에서 지난해 하반기 60%(417조760억원, 60.1%)를 넘었고, 올해는 그 폭이 더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이 정기예금에 지속적으로 돈을 넣고 있다는 뜻이다.

정기예금이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기업들의 투자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7년까지 큰 폭 늘었던 국내 설비투자는 지난해부터 고꾸라졌다. 지난해 2분기 이후 분기별 증가율은 -4.3%→-9.4%→-5.3%→-17.4%→-7.0%→-2.6%로 여섯 분기째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거액계좌가 급증한 시기와 기업투자 급감한 시기가 맞물리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기업들의 경영 기조는 ‘긴축 경영’이 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206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47.4%가 ‘내년 긴축 경영’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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