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은 사법개혁의 전제다. 지난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판사 10명 중 9명이 대법원장과 법원장 등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한다”는 응답을 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때문에 만약 법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면 이는 헌법이 정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위다. 더구나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성 수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법원장은 어떤 자리인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 국회의장에 이어 의전서열 3위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각 3인을 지명할 수 있다. 또한 법관 3,000명을 비롯해 1만 6,000여개 자리를 임명·제청·추천·위촉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지명과 국회의 동의를 통해 선출된다. 사법부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적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기 대법원은 아쉽게도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 것으로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도 위반돼 무효다”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년도 지나지 않은 2015년, 전원합의체도 아닌 소부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다. 긴급조치권 발령에 정당성을 부여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일선 법관들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대법원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판사의 회식자리 여검사 성추행, 성폭력 사건 담당 판사의 지하철 내 몰카 사건, 불법 변론과 전관예우로 수십억을 챙기다 구속된 전직 부장판사 사건 등으로 사법부의 도덕성에도 금이 간지 오래다.
진정한 의미의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국민들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는 한 요원하다. 사법부의 구성과 운영이 민주적 절차와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 구성원들의 인식과 관행에 있어서 과거의 특권의식과 서열의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법부 수장이 교체된다. 비 대법관 출신 대법원장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이번 인사는 정부의 사법부 개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차기 대법원은 많은 과제를 안고 출범한다. 법관 블랙리스트에 대한 추가조사는 물론 대법원장 과도한 인사권의 분산 및 승진제도 개선,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상고제도 개선, 전관예우 근절 등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 보루다. 사법부 민주화는 법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