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박근혜와 이정미, 봄날은 온다

  • 등록 2017-03-21 오전 6:00:01

    수정 2017-03-21 오전 6:00:01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이날 헌법재판관 8명은 만장일치로 국회가 청구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인용 결정했다. 대통령이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기 못하고 중도 하차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가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중차태한 순간, 이상하게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 헌법재판소장(권한대행)이 여성 대통령을 파면한 날’.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 박근혜의 몰락으로 곤두박질 친 ‘여성 리더십’은 이정미로 인해 치유되고 회복됐다.

솔직히 헌정사상 첫 탄핵대통령이 하필이면 여성이라는 사실이 안긴 자괴감은 컸다. 대선 직후 불거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부터 이듬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국정교과서 논란, 위안부 합의에 이르기까지 집권 4년 여 동안 박 전 대통령은 불통과 아집, 무능력의 낡은 리더십만을 보인 채 끝내는 권좌에서 끌려 내려왔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고통의 기억이다. 세월호 침몰 당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하고 상황실을 찾았다. 학생들이 세월호에 갇혀 생사를 오가는 순간, 촉각을 다투던 그때 머리 손질에 최소 20분 이상을 허비했을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면 원통하다 못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같은 인간으로서, 또 같은 여성이자, 어른으로서 세월호 참사는 오랜 시간 부채감으로 남았다.

필자는 여성이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20년 넘게 사회생활을 했는데 이건 능력과 상관없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다. 이러한 조건 아래 놓이면 대부분의 여자는 비슷한 삶을 산다. 가방 끈이 길건 짧건, 잘난 여자건 못난 여자건 마찬가지다. 육아와 직장생활 사이에서 쉼 없이 저글링을 하며 허우적댄다.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건 고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견디기 힘든 건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일터로 나가는 ‘엄마’로서의 원죄의식이다.

개인적으로는 6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직장에 나갔다. 외국출장을 다녀온 사이 홍역을 앓아 좁쌀처럼 돋아난 발진을 하얀 연고로 덕지덕지 가린 채 엄마 품에 안기던 아이의 얼굴을 난 잊을 수 없다. 신종플루를 앓았을 때에는 아이가 놀랄까 몇 일 밤을 꼭 끌어안고 지내기도 했다. 어린이집 졸업식이 있던 날에는 최장기 원생으로 상장에 연필과 노트 등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걸 받아들고는 좋다고 웃는 아이의 모습에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여성’의 삶은 순탄치 않다. 똑똑한 여자는 피곤해 하며, 개인의 성취나 목표에 집중하는 여성은 드세거나 독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비교적 성차별이 덜하다는 기자 사회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피라미드 구조 윗부분은 여전히 남성들의 몫이다.

‘여자가 살기 좋아졌다’라고들 하는데, 솔직히는 모르겠다. 어린이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들은 엄마부터 찾는다. 보다 정확히는 ‘엄마’만 찾는다는 표현이 옳다.

박근혜의 ‘불명예 퇴진’을 그냥 보아 넘기기에 어려웠던 건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아서다. 솔직히 어렵게 깨부순 유리천장이 그로 인해 더욱 두껍게 개보수될 것을 우려했다. ‘여성리더십’은 이제 끝이구나 싶기도 했다.

탄핵심판이 있던 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출근길에 ‘헤어롤’을 미처 풀지 못한 채 차에서 내렸다. 이 권한대행의 ‘헤어롤’은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대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13일 퇴임식은 고작 9분 만에 끝이 났다. 그의 퇴임식은 소박해서 아름다웠다.

성공한 여성이 남긴 상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 다른 성공한 여성으로 인해 치유됐다. 광화문 광장을 겨우내 수놓은 촛불집회도 20주 만에 끝이 났다. 일상으로 돌아가니 어느새 봄이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하는 게 옳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상처 또한 잘 뽑은 대통령으로 치유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5월9일 조기대선이 많은 이들이 일컫듯 ‘장미대선’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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