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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짓지 않는 ‘해방촌 도시재생사업’..갈길멀다
해방촌은 지난 1945년 광복 이후 고향을 떠난 실향민과 해외동포들의 거주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2006년 용산과 뚝섬에 친환경 주거타운을 만드는 ‘강북 유턴 프로젝트’와 2009년 남산에서 용산공원 예정지를 잇는 녹지축 연결사업인 ‘남산 그린웨이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일대 부동산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가 껑충 뛰었지만 거래는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최근 서울시가 두 개의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면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 프로젝트인 ‘도시재생사업’과 치솟는 상가 임대료에 주민이 동네를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는 종합대책이 그것이다. 올해로 70년을 맞은 해방촌의 정취를 유지하고, 인기 상권으로 떠오르면서 뛰기 시작한 임대료까지 잡겠다는 게 서울시의 계획이다. 시는 최근 최대 100억원을 들여 해방촌만의 특화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이 본격적인 첫발을 떼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공청회와 시의회, 도시재생위원회 심의 등 여러 단계의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해방촌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관계자는 “총선도 있고 하니 내년 가을은 돼야 본격적인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지 않겠나 하는 의견이 많다”며 “해방촌 신흥시장 지붕은 다 부서져서 눈이 많이 오면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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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도시재생본부 관계자는 “해방촌 안에 있는 시유지를 제공하더라도 구청에서 건물 건립비용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건물 건립에만 수십억의 비용이 들어 건축물 구조 변경을 통해 예산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적지 않은 예산 때문에 도시새쟁 사업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급등 방지 대책…지킬 의무 없어 ‘유명무실’
해방촌 신흥로길 일대는 이태원의 영향을 받아 신흥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흥로길엔 평일인데도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솔잎(여·31)씨는 “해방촌은 획일화된 상권들과 달리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자주 찾는다”며 “대형 프랜차이즈 없이 이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경쟁력을 간직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해방촌의 임대료 급등에 따른 원주민과 젊은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내놨다. 건물주와 임차인, 그리고 시가 ‘상생협약’을 맺고 임대료 인상을 자제한다는 것이 골자다. 지역 내 부동산을 사들여 대표 시설을 지은 뒤 영세 소상공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매입비의 최대 75%를 시중금리보다 1%포인트 낮게 장기(최장 15년) 융자 방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시의 대책이 법적 구속력이 없어 보여주기식 정책에 그칠 것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지난해 서대문구와 마포구가 나서 신촌·합정 지역 상권 상생협약을 추진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5년 상가임대정보 및 권리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촌·마포 지역의 임대료는 2년 새 3.8%가 올라 서울지역 상가 임대료 평균(1.9%)의 2배에 달했다.
선종필 상가뉴스 레이다 대표는 “이번 대책은 법적으로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며 “시가 건물주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해주고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장기안심상가’를 추진한다지만, 임차인이 원상복구하고 나가는 게 관례인 상가 임대차 시장에서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